2014년 한국의 대학은 온통 위기이다. 한 편에서는 경쟁력을 키워 세계로 도약하라는 사회적 기대와 압력, 다른 한 편에서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정부와 언론의 압박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다른 쪽에서는 진리탐구와 비판이라는 대학 본연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여론의 질책이 끊이지 않는다.
서울대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대가 처한 상황은 오히려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엄중하고 심각하다. 2012년 법인화된 서울대는 새 총장 선출을 앞두고 있다. 총장선출은 법인화 2기의 방향을 결정짓는 출발점이자 시금석이다. 그러면 2기 국립대학법인 서울대 총장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어떠한 비전과 자질, 역량을 갖추어야 할까.
서울대 구성원들은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고립과 상호무관심, 분열 속에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대학에 만연한 고립주의, 분열주의, 개인과 학과, 단과대 별로 할거하여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분파적 이기주의로 내부혁신을 기대하기 힘든 구조가 고착되었다. 따라서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이야말로 새 총장이 갖춰야 할 첫째 덕목이 아닐 수 없다. 기초교육 등 교육 수준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고 세계 수준의 연구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연구인프라를 개선시켜야 하며, 거버넌스와 사회공헌 부문에서 신기축을 이룩해야 한다. 이 모든 일을 개혁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하지만 개혁이란 실은 대학의 기본, 즉 대학 본연의 임무와 사명을 21세기 변화된 상황에 맞게 더욱 충실히 구현하는 일이기도 하다.
법인화 2기에는 재원 조달 방법을 기존의 ‘펀드 레이징’(fund raising)에서 ‘재원 창출’(resource creation)로 바꿔 나가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법인화 1기 서울대는 역대 최고 수준의 재원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더 이상 외부에, 정부와 기업을 찾아다니며 손을 벌리는 모금방식에만 의존해서는 대학 혁신에 필요한 자금을 충당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손을 벌리는 순간 의존이 시작된다. 대학의 자유에도 맞지 않다. 물론 대학에 대한 국가적 책임은 변함없이 유지해야 하지만 대학의 자구노력이 필요하고 이를 실현시킬 더 창발적인 아이디어와 대안을 찾아야 한다. 서울대의 R&D 역량, 지식재산권, 발전기금, 벤처 창업 사업 등 모든 지식자산들을 연계, 통합하여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이를 다시 대학 발전을 위하여 선순환시키는 재정혁신의 선순환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새 총장의 세 번째 덕목은 시대와 사회에 대한 헌신과 리더십이다. 겸허한 인품과 선공후사의 자세, 협력적 리더십으로 대학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울러 상아탑에 안주하지 않고 나라와 사회를 위해 서울대의 역량과 자원을 흔쾌히 쏟아 붓겠다는 미래지향적 비전과 실천의지가 필요하다. 대학사회를 대표하는 지성과 양심의 파수꾼으로서 늘 나라와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고 제시하는 것도 서울대 총장에게 요구되는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이다.
서울대의 문제는 오히려 바깥에서 더 잘 보인다. ‘자기들만 모르는’ 문제들을 외면한 채 ‘아직은 괜찮다’며 ‘아직도 미신’을 붙들고 있지는 않은지, 교수와 직원, 학생 모두가 함께 머리를 짜내도 시원치 않은데, 누가 내 밥그릇을 빼앗아 가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어디 이를지도 모르는 내리막길을 넋 놓고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 볼 시점이다.
새 총장의 어깨에는 산적한 개혁과제를 지혜롭게 풀어나가야 할 무거운 짐이 놓여있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모든 열정과 역량을 쏟아 부어 서울대의 창조적 비상을 이끌어 갈 훌륭한 총장의 탄생을 기대한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기고-홍준형] 서울대 차기 총장의 조건
입력 2014-06-05 02:34 수정 2014-06-05 0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