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50일가량 지났지만 아직도 금기로 느껴지는 말이 있다. ‘세월호 참사는 가슴에 묻어두고 일상생활로 돌아가자’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나’라는 말은 목에서만 맴돈다. 사석에서 그런 얘기를 하다가도 손사래를 치게 된다. 죽은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고 미안해서 그런 말을 입에 담는 것조차 여전히 죄스럽고 부끄럽다. ‘내 자식이 억울하게 죽었다면 그런 말이 나올까’라는 말도 되뇌게 된다. 지금도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은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고 피눈물로 호소하고 있는데…. 분노와 자조, 죄책감, 정부와 관료사회에 대한 불신, 냉소주의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은 한동안 금기로 남을 것 같다.
여전한 분노와 죄책감
이런 분위기 탓에 요즘 기업인과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은 냉가슴만 앓고 있다. 심리적 충격에 경제의 활력마저 사라졌지만 ‘이제는 경제를 살리자’고 떠들고 다닐 처지가 못 된다. 서서히 활기를 되찾는 듯하지만 상당수 대기업들은 여전히 골프 금지와 행사 자제령 속에 자숙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일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당장 생계까지 어려워질 수 있어 속이 타들어간다. 게다가 마음속 증오와 분노, 자괴감은 몇 마디 구호와 말로 풀리는 게 아니어서 인위적으로 우울한 분위기를 바꿀 방법도 딱히 없어 보인다.
스스로 분위기 전환할 의지도 능력도 없으니 뭔가에 휩쓸리는 모양새를 빌려서라도 생기를 되찾기 바란다는 얘기를 요즘 자주 듣게 된다. 그렇게라도 하면 죽은 아이들에게 덜 미안할 것 같다는 것이다.
올해는 동계올림픽과 지방선거, 브라질월드컵, 인천 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행사로 경제가 활력을 찾을 것으로 기대됐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이후 활기가 사라졌다. 4년마다 돌아오는 지방선거는 상대적으로 차분하게 끝났다. 사실 선거는 유권자들에게 ‘그들만의 잔치’로 치부될 수 있는 데다 아픈 마음을 위로하는 축제 성격은 아니다. 선거 전에는 ‘세월호 참사를 절대 잊지 않겠다’던 정치인들은 이제 표가 결정됐으니 늘 그랬듯이 관심을 끊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계기는 될지 모르겠다.
월드컵의 치유효과 기대한다
따라서 월드컵에 실낱같은 기대를 걸어본다. 우리 선수들이 선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이 무기력증과 냉소주의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월드컵은 우리 대표팀 성적에 따른 경제효과도 적지 않다. 첫 ‘원정 16강’을 일궈낸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때는 경제효과가 수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당시 직접적인 경제적 효과가 1조2951억원이고, 국가브랜드 홍보 효과(1조3500억원)와 기업이미지 제고 효과(1조6800억원)까지 고려하면 4조3251억원으로 추산된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이외에도 우리 선수들의 활약은 실의에 빠진 국민들이 다시 털고 일어서는 힘이 될 수 있다. 1998년 외환위기 때도 박세리 선수가 맨발의 투혼으로 US오픈 우승을 차지하며 국민들에게 ‘다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그건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다.
그래서 우리 대표팀의 선전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8강까지 진출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최소한 16강에는 반드시 올라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막대한 경제 효과뿐 아니라 국민들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치유효과 때문이다. 첫 상대인 러시아전 승패에 수조원대 유형·무형의 가치가 걸려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러시아전에서 패한다면 16강 진출은 희박해지고, 국민들이 다시 우울한 생활로 돌아갈 수도 있어서다. 경기장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러시아는 반드시 잡겠다는 선수들의 투혼을 간절히 바란다.
노석철 산업부장 schroh@kmib.co.kr
[데스크시각-노석철] 세월호 참사와 선거, 월드컵
입력 2014-06-05 0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