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백악관 대변인 9명 중 5명 다국적기업 홍보실로 갔다

입력 2014-06-04 02:59 수정 2014-06-04 03:28
왼쪽부터 카니, 시워트, 마이어스.

지난 3년4개월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입’ 노릇을 한 제이 카니(49) 대변인이 이달 중순 사임한 뒤 다음 ‘행선지’를 어디로 잡을지를 놓고 벌써부터 워싱턴 정가의 관심이 뜨겁다. 백악관 대변인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미국 대통령의 생각을 전파하는 자리인 데다, 영향력도 크다 보니 ‘러브콜’이 많아서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빌 클린턴 행정부 이후 백악관 전임 대변인의 행보를 분석한 결과 9명 가운데 5명이 다국적 대기업의 커뮤니케이션 부서 또는 홍보회사 임원으로 연착륙했다고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클린턴 대통령의 대변인을 지낸 제이크 시워트(50)는 세계 최고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 커뮤니케이션 부서 글로벌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역시 클린턴 정부에서 초대 여성 대변인을 지낸 디디 마이어스(53)는 백악관을 나온 뒤 인기 TV드라마 ‘웨스트윙’ 제작팀에서 자문역을 하다가 최근 미디어복합기업 워너브라더스의 커뮤니케이션 책임자로 스카우트됐다.

오바마 정부의 초대 대변인이자 카니의 전임자였던 로버트 기브스(43)는 2011년 사임 후 ‘인사이트 에이전시’라는 홍보회사를 차렸다.

정부 내 고급 정보라는 자산과 워싱턴 인맥을 쥐고 있는 만큼 글로벌 기업의 공보 책임자로 가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클린턴 대통령의 두 번째 대변인이었던 마이크 매커리(60)는 워싱턴 로비·홍보업체에 취직한 후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와 오바마 대통령의 골프 회동을 주선하며 ‘힘’을 과시하기도 했다. 카니 대변인이 다음 계획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영향력을 휘두를 수 있는 어느 자리로든 갈 수 있을 것이라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이처럼 미국판 ‘백피아’(백악관+마피아) 또는 ‘백악관 대변인 전관예우’가 등장한 것은 근래 들어서다.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과 레이건 대통령 시절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말린 피츠워터(72)는 “내가 활동하던 때는 기업들이 백악관 경력을 갖춘 홍보 담당자를 찾는 일이 거의 없었다”며 “당시엔 기업과 정부가 하는 업무 방식이 명백히 다르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백악관 대변인 출신에게 고액 연봉직 말고도 책 출간, 강연, 심지어 할리우드 영화계 진출까지 다양한 제안이 쏟아진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대변인이었던 아리 플라이셔(54)는 “나 역시 숱한 러브콜이 들어왔지만 주저 없이 워싱턴을 떠났다”며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스포츠 홍보회사를 세워 메이저리그 야구팀을 홍보하는 데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