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지방선거는 유독 ‘사상 초유’ 타이틀을 많이 달고 치러지는 선거다. 그 중심에는 지난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가 있다. 탑승자 476명 중 304명이 사망·실종하자 온 나라가 집단 트라우마를 앓을 정도로 슬픔에 잠겼다. 한창 경선을 진행하던 여야 정당은 선거운동을 멈춰야 했다. 2주 정도 휴지기를 가진 뒤 조심스럽게 경선 일정이 재개됐지만 세월호 이외의 쟁점들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됐다. 당연히 사고의 정치적 손익을 공개적으로 따지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사고 전까지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고공행진이 역대 지방선거의 단골 쟁점이었던 정권 심판론을 덮어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참사 뒤 박근혜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급부상했다. 사고 직후 미숙했던 초동대응으로 정부가 무능한 면모를 적나라하게 노출했기 때문이다. 결국 선거판은 정권 심판론과 정권 수호론이 맞붙는 형국이 됐다.
한국갤럽 허진재 이사는 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솔직히 세월호 사고를 제외하면 이번 선거의 이슈를 찾을 수가 없다. 그밖에 꼽을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사고로부터 파생된 이슈들”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하나의 이슈가 이번 선거 판세를 결정짓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사고 책임론이 정치권으로 향하자 여야는 서로 ‘조용한 선거운동’을 앞다퉈 외쳤다.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선거 콘셉트였다. 후보자를 포함한 모든 정치인이 가슴팍에 실종자의 귀환을 기원하는 노란색 리본을 달고 침통한 표정을 지은 채 지지를 호소했다.
통상적으로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던 선거운동은 차분하게 시작하는 듯했다. 그러나 차츰 네거티브 공방전이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여느 선거 때와 똑같은 고소·고발전으로 비화됐다. 근거 없는 의혹 제기는 물론 상대 후보 헐뜯기, 인신공격도 불거졌다. 조용한 선거운동 약속은 ‘공수표’가 됐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세월호 참사로 유권자들이 선거에 관심을 두지 않다 보니 후보들 간 인물·정책 차별성이 희미해졌고, 네거티브전 양상으로 선거판이 흘러갔다”고 진단했다.
세월호 참사로 정치권 전반을 향한 혐오 감정이 비등했고, 여기에 일부 여권 지지층까지 새누리당에 등을 돌리자 ‘지지하는 후보를 정하지 않았다’는 부동층이 많게는 30%대를 육박하게 됐다. 당초 전반적으로 여당이 유리한 구도라던 선거판은 다시 정리됐다. 광역단체장 선거 지역 17곳 중 절반이 넘는 10곳 안팎이 초박빙 지역으로 분류되는 등 그야말로 판세가 안갯속으로 바뀐 것이다. 정치·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번만큼 여야 승패를 가늠하기 힘든 선거는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6·4지방선거는 충청권을 기반한 유력한 지역정당 없이 치러지는 첫 전국단위 선거이기도 하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대표를 맡았던 자유선진당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대전시장직을 차지했다. 비례대표를 배제하고도 전국에서 광역의회 의원 38명, 기초단체장 13명, 기초의회 의원 95명을 배출했다. 전체 선거 스코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았지만 ‘중원’을 텃밭으로 둔 제3정당이 톡톡한 변수 역할은 한 셈이다. 2008년 탄생한 선진당은 2012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명맥을 이어갔다. 선진당 이전에는 김종필 총재가 이끌었던 자유민주연합이 충청권에서 맹위를 떨쳤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6·4 국민의 선택-기획] 과거와 너무 달랐던 선거
입력 2014-06-04 02:30 수정 2014-06-04 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