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정문에서 출발해 교내를 한 바퀴 도는 순환도로가 요즘 쏜살같이 질주하는 자전거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경사가 가파른 언덕길이어서 자전거 애호가들에게 ‘다운힐’(Downhill·자전거를 타고 빠른 속도로 언덕을 내려가는 것) 명소로 꼽히며 외부인까지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짜릿한 스릴을 즐기는 사이 학생들은 물론이고 차량 운전자들도 위협을 느끼고 있다.
지난달 30일 오후 9시 서울 관악구 서울대 순환도로. 해가 진 데다 가로등 간격도 넓어 교내는 지나는 보행자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웠다. 내리막 도로를 자전거 한 대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이어 비슷한 속도로 자전거 두 대가 뒤를 따랐다. 차나 보행자가 지나고 있었다면 아찔한 상황이 벌어질 뻔했다. 농업생명과학대학 건물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재학생 이모(22·여)씨는 “학교에 버스 택시 오토바이도 많이 다니는데 자전거마저 저렇게 내달리니 요즘은 걸어 다니는 게 무섭다”며 “처음엔 재학생들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외부 자전거 동호회원들이었다”고 말했다.
교내를 지나는 시내버스 기사 A씨는 “자전거가 내리막길을 갈 때는 차보다 더 빠르다”며 “버스는 교내 제한속도인 시속 30㎞를 유지하지만 자전거들은 시속 40㎞ 가까이 달리는 것 같다”고 했다. 사고도 빈발한다. A씨는 “교내 도로가 전체적으로 위험하다. 최근 자전거가 넘어져서 지나던 차량 밑으로 들어가는 장면도 목격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1일 밤에도 자전거 운전자가 택시와 부딪혀 구급차로 이송되기도 했다.
서울대 학생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밤에는 차보다 자전거가 더 무섭다” “최근에도 다운힐 자전거에 부딪혀 다칠 뻔했다” “속도를 줄이지도 않고 횡단보도 지나는 학생들에게 ‘비키라’며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다” 등 대부분 자전거 애호가들을 성토하는 글이다. “교내 자전거 출입을 통제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마저 제기됐다.
학내 여론이 들끓자 서울대 자전거 동호회장이 직접 나섰다. 그는 자전거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올려 “서울대 교내에서 빠르게 질주하는 자전거가 많아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며 “교내에서 시속 30㎞ 이하로 주행하고 전조등과 후미등을 켜고 교통표지판을 준수하며 안전운행을 해 달라”는 호소문을 올렸다.
이날 오후 10시쯤 서울대를 찾은 인터넷 자전거 동호회원 민모(29)씨는 “자전거 운전자들이 자기 기록을 인터넷에 자랑하려고 내리막길에서 무리하게 과속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등도 켜지 않고 교내를 질주하는 일명 ‘스텔스 자전거’ 때문에 다른 애호가들도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서울대 밤마다 ‘총알 자전거’ 몸살
입력 2014-06-04 02:07 수정 2014-06-04 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