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커피 분말이 담긴 거름망에 주전자로 물을 따르자 아내가 면박을 줬다. “그렇게 물을 빨리 따르면 안 돼요. 주전자를 나선형으로 돌리면서 천천히 따르세요. 그래야 커피 맛이 좋아요.” 아내의 말에 남편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는 아내 말처럼 느린 속도로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40년 가까이 서울 성천교회에서 목회를 하다 지난 4월 은퇴한 김기택(70) 목사다. 김 목사는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를 대표하는 원로 중 한 명이다. 그는 감독회장 선거로 교단이 자중지란에 빠진 2012년 5월 기감 임시 감독회장에 선임돼 이듬해 7월까지 교단을 이끌었다.
기감의 수장까지 맡았던 김 목사는 은퇴를 앞둔 지난 2월 별안간 카페를 개업해 눈길을 끌었다.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한 오피스텔 1층에 위치한 ‘동그라미 카페’였다. 은퇴 목사가 고희(古稀)를 맞은 늦은 나이에 창업 전선에 뛰어든 셈이다. 도대체 그는 무슨 이유에서 카페를 차리게 된 걸까.
지난 2일 동그라미 카페에서 만난 김 목사는 “돈을 벌려고 시작한 일이 아니다”며 “은퇴 목사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기감 소속 은퇴 목사만 1400명이 넘는데 외롭게 노후를 보내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은퇴 후엔 이분들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김 목사는 지난해 성천교회에 안식년을 요청했다. 안식년을 희망한 건 은퇴하기 전, 후임인 김인종 목사에게 담임목사로 자리 잡을 시간을 미리 주고 싶어서였다. 그는 안식년을 받은 뒤 기감 본부가 있는 광화문에 카페 자리를 물색했다. 하지만 광화문 일대 가게는 임대료가 너무 비쌌다.
결국 그는 카페 창업을 포기했다. 대신 지난해 8월 지금의 카페가 위치한 오피스텔 7층에 ‘감리교은퇴목사복지회’라는 사무실을 차렸다. 그는 은퇴 목사 20∼30명을 초청해 다양한 행사를 열기 시작했다. 경복궁 탐방, 연극 관람, 탁구 대회…. 그러던 중 올해 초 오피스텔 1층 한 점포가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크기는 19㎡(약 6평)로 협소했지만 카페를 차리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김 목사는 점포를 임대할 생각이었지만 매매가가 생각보다 비싸지 않아 가게를 매입키로 결정했다.
“카페를 열기 전 6주 동안 아내와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어요. 은퇴 목사에겐 모든 음료가 1000원인 게 저희 가게 특징입니다. 카페 수익금 중 70만원은 매달 감리교은퇴목사복지회에 기탁하고요.”
은퇴는 했지만 김 목사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아내인 이기순(65) 사모와 매일 새벽 4시25분쯤 일어나 교회에 출석해 새벽기도를 드린다. 부부는 아침밥을 먹은 뒤 8시쯤 가게로 출근한다. 부부가 카페에 나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건물 경비원 4명에게 공짜 커피를 배달하는 일이다. 개업 당시 추운 날씨에 고생하는 경비원들이 안쓰러워 커피를 주기 시작한 게 카페의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가게 상호(商號)의 ‘동그라미’는 김 목사의 오랜 별명에서 연유했다. 성천교회 성도들은 온화한 성품의 김 목사에게 ‘동그라미’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카페 영업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이 사모 역시 새롭게 시작한 카페 일에 큰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는 “손님이 커피를 맛있게 드시면 기분이 정말 좋다”며 미소를 지었다. “바리스타 일이 재미있어서 힘든지도 모르겠어요. 커피 맛은 저보다는 목사님이 타는 게 더 맛있는 것 같아요(웃음).”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김기택 목사의 무한변신 “은퇴 목회자 위한 사랑방 만들었죠”
입력 2014-06-04 02:30 수정 2014-06-04 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