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북 비핵화 원칙론 재확인… 6자회담 문턱 여전히 높다

입력 2014-06-04 02:59 수정 2014-06-04 03:28
우리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황준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2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미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글린 데이비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회동을 마친 뒤 담소를 나누고 있다. 양측은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야 6자회담이 재개될 수 있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정부 고위 당국자는 2일(현지시간) “헌법에 ‘핵 보유’를 명기하고 핵 개발과 경제건설 병진 노선을 국가정책으로 천명하고 있는 상대(북한)와는 의미 있는 대화가 힘든 게 아니냐”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워싱턴DC 한국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북한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 재개 여건으로 가장 핵심적인 것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진정성’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과 미국이 비핵화 대화 재개를 위한 여건을 만들 수 없으며 이는 전적으로 북한이 해야 할 몫”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권력승계 후인 2012년 4월 헌법에 핵 보유를 명문화했고, 이듬해 3월 31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해 ‘핵무력·경제건설 병진 노선’을 공식 채택한 바 있다.

북한이 헌법 조항과 핵·경제 병진 노선을 부정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 당국자의 발언은 북한 비핵화라는 원칙론을 내세우며 한·미가 더욱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는 지난주 중국 왕이(王毅) 외교부장의 방한 이후 한·미 양국이 6자회담 재개의 문턱을 낮추는 조건을 모색할 것이란 예상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그동안 6월 말로 예상되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에 맞춰 6자회담 재개 돌파구가 열릴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돼 왔다.

이 당국자는 이런 해석을 의식한 듯 “(6자회담 재개 조건이) 현재로서는 낮아졌다, 높아졌다고 말할 수 없다”면서도 “그러나 기본적으로 의미 있는 비핵화가 돼야 하고, 그러려면 북한이 비핵화의 진정성을 어느 정도 보여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상식적으로 비핵화 테이블에 나오는 상대가 비핵화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대화가 되겠느냐”며 “예를 들어 병진 노선을 지금부터 포기한다고 대외적으로 천명하거나 헌법에서 핵 보유를 삭제한다면 중요한 진전이 될 수도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처럼 한·미가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배경에 대해 여러 분석이 나온다. 우선 대북 공조의 한 축이던 일본이 최근 전격적으로 일부 대북 제재를 해제할 방침을 밝히자 한·미 양국이 비핵화에 더욱 원칙론적 입장을 견지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분석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이 당국자는 일본이 납치 피해자 재조사 문제는 몰라도 대북 제재 해제 내용을 사전에 한국과 미국에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는 언급을 여러 차례 했다. 미국도 구체적인 대북 제재 해제 내용을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고 ‘불투명한’ 일본의 협상 과정에 불쾌해한다는 것이다.

이 당국자는 그동안 한국과 미국이 6자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북한에 제시해 온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2·29합의+α(알파)’도 부인했다.

그는 “알파설은 오래된 프레임으로 한·미 양국이 그런 프레임으로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만일 북한이 비핵화의 진정성을 갖고 있다면 전제조건이 2개이건 7개이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했다.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우라늄 농축 활동을 포함하는 영변 핵 활동 유예(모라토리엄)’,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단 입북 허용 등 구체적 비핵화 조치들의 항목을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넣거나 빼거나 하는 방식도 해결책이 아니라는 데 한·미 간 공감대가 이뤄졌다는 얘기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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