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관피아 못 막는 공직자윤리委 존재 의미 있나

입력 2014-06-04 04:29
관피아(관료+마피아)를 없애야 한다는 열망은 공명 없는 메아리에 그쳤다. 세월호 참사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관피아를 근절하자는 국민적 바람에도 불구하고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퇴직한 지 한 달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국장급 인사의 대기업 취업을 허용해 비판을 받고 있다.

공직자윤리위는 지난달 30일 회의를 갖고 4월 23일 퇴직한 산업부 A국장의 포스코 전직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11명의 위원 중 8명이 참석한 회의에서는 최근 관피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감안한 듯 격론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표결을 거친 결과 찬반이 4대 4 동수로 나왔고, 취업 제한을 하려면 참석 위원 과반수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A국장은 취업 심사를 통과했다. 윤리위는 A국장이 퇴직 전 5년간 기획 분야에 주로 근무해 소속 부서와 취업 예정 기관 사이에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해 취업을 승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같은 처사는 공직자윤리법의 근본 취지를 뿌리째 흔드는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비록 A국장의 근무 부서 업무와 포스코가 직접적 관련성은 적다 하더라도 철강산업 자체가 정부 정책의 영향을 직접 받는다는 점에서 윤리위의 설명은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 산업부 산업정책실 산하 철강화학과가 철강정책을 관장하는 것은 물론 포스코 회장 선임도 사실상 정부가 좌우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행정고시 출신으로 산업부에 오래 근무한 A국장이 친정인 산업부를 상대로 모종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하다. 무엇보다 정부가 지난달 28일 국장급 이상 퇴직 공무원의 직무 관련성 판단 기준을 ‘소속 부서’가 아닌 ‘소속 기관’으로 확대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는 등 관피아 척결을 강화하는 시점에 이런 결정을 내리다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윤리위가 퇴직 공직자의 사기업 취업 심사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은 지난달 공개된 ‘퇴직 공직자 취업심사 내역 및 심사 결과’에서 이미 분명히 드러났다. 이 자료에 따르면 윤리위는 지난 6년4개월여 동안 총 1819건을 심사해 이 중 7.4%에만 취업제한 조치를 내렸다. 차제에 공직자윤리위원 11명 중 4명인 공무원을 배제하거나 아예 재취업 심사 자체를 책임 있는 독립 기구에서 다루는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논란이 일자 포스코는 A국장 임용을 전격 철회했다. 대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으로 해석돼 다행스러운 결정이라고 하겠다. 다른 대기업들도 관피아를 거부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