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 사태 25주년] “아이들 희생 제대로 알리자” 어머니들은 강했다

입력 2014-06-04 02:29 수정 2014-06-04 03:27
딩쯔린(丁子霖·78)은 25년 전 중국 런민(人民)대 교수였다. 6월 4일 당일 고교 2학년이던 아들을 잃자 희생자 어머니들의 모임인 ‘천안문 어머니회(天安門 母親)’를 조직했다.

천안문 어머니회는 그동안 홍콩 시민단체 ‘홍콩시민지원 애국민주운동연합회(지련회)’와 긴밀하게 협력해 왔다. 6·4 진상 규명과 재평가를 촉구하는 활동에서 궤를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홍콩에 문을 연 ‘6·4 기념관’에 딩쯔린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물이 있는 것도 당연하다.

천안문 어머니회 회원들은 6·4 25주년을 앞두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희생자 가족을 만난 기록을 담은 ‘탐방실록’을 처음으로 펴내기도 했다. 이들은 지난해 10월부터 5명이 3개조로 나뉘어 전국을 돌면서 희생자 가정 21곳을 방문했다.

딩쯔린은 지금 장쑤(江蘇)성 우시(無錫)의 집을 떠날 수가 없다. 남편 장페이쿤(蔣培坤)도 마찬가지다. 당국은 그가 베이징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가택연금 조치를 취했다. 이런 상황은 천안문 어머니회 다른 회원들도 똑같이 겪고 있다. 회원 중 한 명인 인민(尹敏)은 자유아시아TV 기자에게 “집 앞에 ‘기자출입금지’라는 팻말이 걸려 있다”며 “공안 세 명이 한 달 전부터 24시간 감시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딩쯔린은 이제 나이가 많아 회장직을 유웨이제(尤維潔)에게 물려줬다. 유웨이제는 6·4 당시 남편을 잃었다.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매체 보쉰은 베이징에 있는 천안문 어머니회 회원이 100명이 훨씬 넘는다고 전했다.

6·4 사건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나왔지만 생존자들은 생존자대로 쫓기는 신세가 됐다. 당국은 학생 지도자 21명에게 긴급 수배령을 내렸다. 이들 가운데 3분의 2는 해외에, 나머지는 중국에 살고 있다고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매체 둬웨이(多維)는 전했다.

수배 1호였던 왕단(王丹·45)은 현재 대만 칭화(淸華)대 인문사회학원 객원교수로 있다. 베이징대 학생이었던 그는 반혁명선동죄로 두 차례에 걸쳐 7년간 복역한 뒤 1998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방중을 계기로 석방됐다. 그 뒤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천안문 광장 보위’ 총지휘자였던 차이링(柴玲·48)은 미국으로 탈출해 하버드대 경영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소프트웨어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미 의회에서 열린 6·4 25주년 청문회에 출석해 “무자비한 무력 진압에도 미국이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고 실망했다”고 말했다.

인민대회당에서 학생 대표들과 함께 리펑 총리를 만나 논리 정연한 주장을 펴는 모습이 국영 CCTV에 방영돼 주목을 받은 위구르족 출신 우얼카이시(吾爾開希·46)는 대만에서 정치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