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에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과 사이좋게 지내기는 하나 무턱대고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뜻으로 군자의 자세를 말합니다. 최근 디자인 영역에서도 화이부동이 새로운 콘셉트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문화재 등을 소개하는 표지판이나 안내판이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되 개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개념이지요.
얼마 전 충북 괴산에 위치한 화양구곡을 찾았다가 화이부동을 떠올렸습니다. 화양구곡은 조선시대 대학자 우암 송시열이 은거했던 곳입니다. 특히 금사담의 벼랑 위에 앉아 있는 암서재는 송시열이 후학을 가르치던 곳으로 주변의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화양구곡을 찾는 탐방객들이 암서재를 카메라에 담는 이유이지요.
그런데 암서재 옆에는 화이부동과는 거리가 먼 ‘수영금지’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익사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친절하게도 국립공원이나 지자체에서 내건 현수막입니다. 문제는 현수막이 하필이면 암서재의 풍광을 심하게 훼손하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넓은 계곡에 하필이면 ‘알박기’하듯 내건 현수막이 사진 촬영을 못 하도록 심술을 부리는 것 같아 여간 씁쓸하지 않았습니다.
화양구곡의 ‘수영금지’ 현수막처럼 전국 관광지에는 자연경관을 훼손하는 디자인 감각 제로의 현수막과 안내판 등이 부지기수입니다. 어떤 안내판은 모양이 조악하고 어떤 안내판은 너무 커서 문화재를 가릴 정도입니다. 한글 맞춤법이 틀린 것은 물론 엉뚱한 곳에 설치된 안내판도 적지 않습니다.
디자인 감각 제로의 안내판과 현수막이 양산된 데는 문화재나 유적지 등 공공시설에 대한 관리가 지자체 중심으로 이뤄지는 데다 명확한 관리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공공디자인 개선사업의 일환으로 통일된 표지판 및 안내판 시안을 제작해 보급하고 있지만 전국의 안내판을 모두 교체하려면 하세월이지요.
주변 경관과 어울리면서 개성까지 겸비한 디자인 감각 만점의 ‘화이부동 안내판’이 확산되기를 손꼽아 기다려 봅니다.
박강섭 기자
[박강섭의 시시콜콜 여행 뒷談] 디자인 감각 ‘제로 현장’
입력 2014-06-05 0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