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성포 무논에 누가 동양화를 그렸나

입력 2014-06-05 03:34
'조기의 고향' 칠산바다가 저녁노을에 붉게 물든다. 바닷물이 햇살과 함께 빠져나가자 반원형의 물돌이 지형을 그리는 와탄천 갯벌이 통통하게 살이 오른다. 모내기가 한창인 한시랑뜰의 무논도 시시각각 어둠 속으로 침잠한다. 이어 법성포 가로등이 하나 둘 불을 밝히자 한시랑뜰의 소드랑섬이 거울 속에 비친 아낙의 눈썹처럼 짙어진다.

영광굴비로 유명한 전남 영광의 법성포는 바다가 육지 안쪽으로 깊숙이 파고든 만(灣)이다. 만선의 깃발을 펄럭이는 조기잡이 어선과 전라도의 세곡을 산더미처럼 실은 조운선들은 모두 이 포구를 들고 났다. 백제시대 때는 중국 진나라의 마라난타가 법성포구를 통해 불교를 전파했고, 명량해전에서 승리한 이순신 장군은 물산이 풍부한 이곳으로 전략적 후퇴를 하기도 했다.

조기잡이 철은 끝났지만 포구는 해풍에 꼬들꼬들 말라가는 굴비가 곶감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진풍경을 연출한다. 참조기를 염장해 말린 굴비(掘非)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고려 인종의 외조부이자 장인인 이자겸은 사위를 몰아내고 스스로 임금이 되려고 난을 일으켰다 법성포로 귀양을 왔다. 이때 조기 맛에 반해 임금에게 진상을 했다. 인종이 무슨 고기냐고 묻자 이자겸은 ‘네 앞에는 결코 굴하지 않겠다’는 뜻을 담아 굴비로 명명했다고 한다.

참조기가 굴비가 되어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9번 죽고 26명의 손을 거친다고 한다. 그물에 걸려 죽고, 소금간을 하면서 죽고, 건조하는 과정에서 또 죽는다고 하니 굴비가 탄생하기까지 많은 손을 거친다는 뜻이리라. 서해안에서 조기가 잡히지 않는 곳이 없지만 하필이면 영광굴비를 으뜸으로 꼽을까? 영광군의 서화주 문화관광해설사는 “서해안을 따라 올라오는 조기는 영광의 칠산바다를 지날 때 기름기가 많고 알이 통통하게 배어 맛있다”며 “여름에도 길쭉한 포구를 따라 북서풍이 불어 연중 굴비를 말리기에 좋은 환경이다”고 말했다.

조기 파시(波市)가 설 때는 “영광 법성포로 돈 실러 가세”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충청도와 전라도의 어물상들이 떼 지어 몰려와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 특히 한양으로 떠났던 세곡선이 전국 각지의 상품을 싣고 돌아오는 단오(음력 5월 5일) 무렵에는 법성포에서 큰 장이 서고 단오절 행사가 성대하게 열렸다.

서해안 유일의 단오절 행사는 마을 뒷산인 숲쟁이에서 열렸다. 국가명승 제22호로 지정된 숲쟁이는 100∼400년생 느티나무 150여 그루가 숲을 이룬 방풍림으로 주민들의 휴식공간이자 놀이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조선시대 수군의 진성(鎭城)이 위치한 인의산 능선에 조성된 숲쟁이의 ‘쟁이’는 언덕 또는 성을 의미하는 말로 ‘숲이 있는 언덕’이라는 뜻이다.

한낮에도 햇빛 한 점 스며들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숲쟁이에는 평상이 몇 개 놓여 있다. 마을 노인들은 시원한 바람이 부는 평상에 앉아 장기도 두고 담소를 나누면서 한여름을 보낸다. 단오절 행사 때 국악공연 등이 열리는 숲쟁이는 거대한 야외무대로 전국에서 몰려든 재인들은 초대형 그네 2개에서 묘기를 선보이기도 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택지리’에 “영광 법성포는 밀물 때가 되면 포구 바로 앞까지 물이 돌아서 호수와 산이 아름답고, 민가의 집들이 빗살처럼 촘촘하여 사람들이 작은 서호(西湖)라고 부른다. 바다에 가까운 여러 고을은 모두 여기에다 창고를 설치하고 세미를 거두었다가 배로 실어 나르는 장소로 삼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숲쟁이에 설치된 나무데크 산책로를 오르면 260여년 전 이중환이 본 법성포의 모습을 어렴풋하게나마 그려볼 수 있다. 새콤달콤한 오디가 지천으로 열려 있는 뽕나무 아래로 펼쳐지는 법성포는 한 폭의 그림이나 마찬가지. 빗살처럼 촘촘하던 초가집들은 현대식 건물로 바뀌고 수백 척의 어선이 만선의 깃발을 펄럭이던 포구는 간척사업으로 줄어들었지만 포구 건너편 대덕산의 정취는 여전하다.

법성포에서 백수해안도로로 가는 곳에 위치한 대덕산은 내륙이 아닌 해안에서 물돌이 지형을 감상하는 보기 드문 곳이다.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갯벌이었던 백수읍 와탄천변에 제방을 쌓고 한시랑마을 앞에 위치한 소드랑섬 주변을 간척해 한시랑뜰로 불리는 논을 조성하면서 자연스럽게 물이 돌아나가는 물돌이 지형이 만들어진 것이다.

언목으로 불리는 고갯마루에서 대덕산 정상까지는 800m에 불과하지만 제법 가팔라 30분쯤 걸린다. 등산로 주변은 온갖 야생화들이 피고 지는 산상의 화원. 정상 아래에는 반원형의 한시랑뜰이 한눈에 들어오는 바위와 무덤이 차례로 나온다. 이곳에서 사진 촬영을 하는 사람도 많지만 법성포 일대를 두루 보려면 해발 303m 높이의 대덕산 정상에 올라야 한다.

대덕산 정상에 위치한 대덕정은 영광 일대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팔각정이다. 한시랑뜰 반대편으로 눈을 돌리면 검은색의 인삼밭과 누렇게 탈색한 보리밭, 거울 같은 무논, 그리고 붉은 황토밭이 바둑판처럼 이어져 거대한 채색화를 연출하고 있다. 영광의 나지막한 산과 마을들은 이 채색화의 중간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한시랑뜰은 황금색 들판으로 변신하는 가을과 하얀 눈으로 뒤덮이는 겨울 풍경도 아름답지만 모내기를 즈음한 무논이 저녁노을에 붉게 물드는 요즘을 으뜸으로 꼽는다. 물돌이 지형은 산자락에 묻혀 보이지 않는 백수해안도로 너머 칠산바다로 해가 지면서 시시각각 장관을 연출한다. 한시랑뜰 최고의 풍경은 저녁노을에 붉게 물든 구름이 거울 같은 무논에 반사될 때지만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반원형의 거울 같은 한시랑뜰을 배경으로 한 법성포의 비경은 해가 지고 난 후에도 장관이다. 솥뚜껑을 닮았다는 소드랑섬을 비롯한 산줄기가 어둠 속으로 침잠하고 나면 바둑판처럼 반듯반듯한 무논은 여백이 많은 한 폭의 동양화로 거듭난다.

영광=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