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명 대(對) 500∼2600명’.
1989년 6월 4일 천안문 사태 때 숨진 사람들 수치다. 중국 정부의 공식 발표는 246명이었다. 그러나 미국 조지워싱턴대가 출판한 ‘1989년 천안문 광장: 역사의 비밀을 풀다’라는 책에서는 사망자가 최소 500명, 최대 2600명에 달했을 것으로 봤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가 학생 시위를 ‘반당(反黨) 동란’이라고 사설로 규정했지만 서방 국가들은 ‘천안문 민주화 운동’이라고 부르는 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다.
베이징의 유명 인권운동가 후자(胡佳)는 지난달 31일 웨이신(중국판 카카오톡)에서 “연속 97일째 연금 상태에 있다. 국보총대(國保總隊)가 나에 대해 강제 조치를 취하겠다고 어머니에게 말했다”고 전했다. 구속될 준비가 돼 있다고도 했다. 국보총대는 베이징시 공안국 국내안전보위총대를 가리킨다. 그는 “공민 후자는 시진핑(習近平)에게 재산 공개를 요구한다”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사진도 올렸다. 천안문 사태 25주년을 맞는 중국의 한 단면이다.
홍콩에서 지난 1일 열린 대규모 집회에서는 어김없이 ‘핑판(平反) 6·4’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천안문 사태를 재평가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젊은 세대, 즉 80년대생이나 90년대생은 ‘6·4’를 자신들의 삶과는 관계없는 옛날 얘기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90년대생은 심각한 대졸 취업난을 겪다보니 “그런 일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BBC가 영국에 유학한 중국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취재한 결과도 비슷했다. 일부는 “과거 그런 열정을 가졌던 학생들이 부럽다”고 대답했다. 런던대에 다니는 한 학생은 “중국은 60, 70년대 정치 암흑기에서 벗어나 현재에 이르는 동안 세계에서 가장 실력 있는 나라가 되지 않았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당수는 “중국 인터넷에서는 자료를 제대로 찾을 수가 없다”며 “중국에서 언론자유가 더 확대되기를 바란다”는 반응을 보였다.
시진핑 주석은 집권 초기 법치와 민주를 강조하는 등 민주화 세력의 목소리를 수렴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천안문 사태 재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는 기대를 낳았다. 하지만 집권 2년 차로 넘어오면서 이 같은 희망을 갖는 사람은 없어졌다.
중국 정부는 올해도 천안문 사태를 ‘1980년대 말에 일어난 정치적 풍파’로 표현하면서 “이미 명확한 결론을 내렸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재평가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민주화와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민중을 무력 진압한 사건을 재평가하는 것은 당시 민중의 요구가 정당했고 공산당의 결정이 잘못됐다는 점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공산당 일당 체제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는 결과다. 신화통신 기자 출신인 한 중국 언론인은 “멀지 않은 장래에 6·4 재평가가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지난 25년은 중국 공산당이 방향을 잘 선택했지만 향후 25년은 넘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 주석은 일당 지배를 위해 ‘민족주의’와 ‘억압’ 두 가지를 활용하고 있다. 부패척결과 시장개혁도 주요 수단으로 삼았다. 지금까지는 전략이 적절한 것처럼 비쳐졌다.
그러나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고 개혁을 심화하면서 정치·경제적 기득권층과의 갈등이 깊어져 사회적 모순이 커지면 또다시 민주화를 요구하는 군중 시위가 벌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당이 사회 변화에 탄력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얘기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 공산당은 앞으로 25년을 지탱할 수단을 갖고 있는가”라고 의문을 던졌다. 25년 전처럼 또다시 군대를 동원하기도 쉽지 않다는 뜻이다. 당시 5월 19일 새벽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는 천안문광장을 찾아 학생들에게 “우리는 늙었지만 당신들은 젊기 때문에 몸을 다쳐서는 안 된다”며 해산을 호소했다. 하지만 덩샤오핑(鄧小平)의 의견을 집행한 리펑(李鵬) 총리는 그날 밤 ‘베이징 당정군 간부대회’를 주재하며 “지금 국면을 전환하지 않으면 전국적인 대동란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 경우 개혁개방은 물론 중화인민공화국의 앞날이 위협받게 된다”고 군대 동원을 주장했다. 그리고 다음날 계엄령은 선포됐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
[천안문 사태 25주년] “平反 6·4” 빗발치는 국내외 구호… 시진핑은 묵묵부답
입력 2014-06-04 02:59 수정 2014-06-04 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