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강은교] 오후 여섯시의 푸른 극장

입력 2014-06-04 02:59 수정 2014-06-04 03:27

오랜만에 극장엘 갔다. 요즘 젊은이들이 가는 극장은 내가 옛날에 가곤 했던 극장과 어떻게 다를까. 거기서 지금도 사랑은 이루어지고 있을까 하고. 하긴 요즘은 갈 곳이 하도 많으니 극장 같은 곳에서 촌스럽게 연애를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옛날 나에게 극장은 사랑이었다. 통금이 있던 시절, 그 어두컴컴한, 출구가 보이지 않던 극장은 얼마나 간절히 일탈과 탈주의 꿈이 살고 있는 곳이었던가. 그래서 시인 기형도가 심야극장에서 쓰러져 영원히 떠나버렸을 때 나는 아주 깊은 느낌을 마주하기도 했던 것이다. 기형도는 참 용감했구나, 하고 중얼거리면서. 그 시절 나는 상상의 물결 속에서 미친 듯이 ‘비상구’를 향하여 달려가곤 했으며, 그 비상구로 날개를 솟아오르게 하곤 했다. 날개가 솟아오른 나는 또 한사람의 날개 솟아오르는 손을 잡곤 했다. 따뜻한 손의 뛰는 맥박을 느끼며 놀라 아, 이렇게 따뜻한 온도의 손도 있구나, 감격하기도 했다.

그의 어깨에 기대곤 했다. 나에게도 기댈 어깨가 있음에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주인공 배우에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패배한 주인공에게는 더욱 간절한 눈물을 보내면서. 불이 켜지고 상상이 커다란 상처임을 깨닫는 순간, 아름다운 주인공 여배우와 나의 얼굴이 동일시되던, 그 어둡고, 자궁같이 따스한 공간은 사라져 버리고 극장 계단에 붙어 있던 대형 거울은 나의 지극히 평범한 얼굴을 군중 속에서 비춰주곤 했다.

그렇다. 그 시절, 극장은 나를 특수화했다. 나는 거기 빼꼭히 차 있는 어둠에 기대어 그와 나만의 ‘특별한’ 온도를 교환했다. 그러나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나는 평범하게 되었고, 지극히 평범하게 된, 즉 일반화된 나는 누구나 하듯 그와 집 앞 골목에서 헤어졌다. 그리고 곧 넥타이를 매는 한 낯선 남자의 모습을 황홀하게 바라보면서 ‘설거지 전문가’가 되어 일상의 숲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늘도 극장에서는 짙푸른 파도 냄새가 풍겨온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보니 오늘의 젊은이들도 팝콘을 먹으며 손을 잡고 있었다. 아마도 그 극장의 비상구는 곧 일상으로부터의 탈출구가 될 것이다. 극장의 대형 거울엔 지극히 일반화된 외로운 한 여인, 혹은 한 남자의 대머리가 오후 여섯시의 지하철 냄새를 피우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언젠가’가 숨어 있어 영원히 푸른 처녀 베아트리체와 함께 배를 떠나게 하고 있으리라.

강은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