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박정수]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부 역할

입력 2014-06-04 02:59 수정 2014-06-04 03:27

지난 50년간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정부 역할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우리 경제가 과거 숱한 대내외 악재에 직면해서도 그때마다 유연한 대처로 지속적으로 고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부 주도의 정책, 효율적이며 유능한 관료그룹, 그리고 정책에 반응해 성공적으로 민간 부문을 키워온 기업들의 노력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성장 일변도 정책으로 인해 현재 여러 부작용과 사회계층 간 갈등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만약 정부의 리더십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 경제가 세계경제 지도에서 어디쯤 위치하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과거 우리와 처지가 유사했던 많은 개발도상국의 경우와 달리 우리는 실효성 높은 성장정책, 유능한 관료들, 그리고 부패하지 않은 정부가 있어서 성장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1990년대를 거치며 우리 경제의 성장 패러다임이 개방과 자율로 옮겨가면서 점차 정부의 역할은 변화해 왔다. 우리 경제의 성숙도가 높아짐에 따라 더 이상 정부 주도의 성장과 발전이 가능하지도 또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인식이 자리 잡은 이유다. 시장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기업이 가장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고 이에 대한 효율적인 대응 또한 기업만이 할 수 있는 상황에서 과거와 같이 정부가 선도해 경제를 이끄는 틀은 복잡다단해지고 선진화된 우리 경제에 더 이상 적절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제 정부의 주된 역할은 경제를 선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 본연의 기능에 충실히 임하는 데 있는 것이다. 시장경제가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경쟁적인 여건을 조성하고, 시장 실패를 보완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소득 재분배와 복지를 지원하는 데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과거 성공의 유산이 오히려 우리 정부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데 있다. 정부가 시장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이 아직도 예전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규제와 통제의 끈을 푸는 순간 경제는 무질서와 혼돈에 빠질 것이라는 인식, 정부가 제도를 통해 시장을 선도해 부가가치 창출에 앞장설 수 있다는 인식, 정부가 정하는 방향으로 경제가 돌아가야 한다는 인식 등 아직도 예전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관여하고 개입하면 할수록 시장의 효율은 떨어지고, 못 미더운 시장에 대한 직간접적 통제가 심해질수록 성장의 기틀은 시들어가는 시대가 된 지금 오히려 정부가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과거 정부 주도 성장의 틀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민관 유착관계와 ‘관피아’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직도 상당 부분 남아 시장교란 요인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은 관피아가 존재하는 한 국민들은 더 이상 정부를 공정한 시장질서 관리자로 보지 않을 것이고 그로 인해 정부 정책은 신뢰성과 실효성을 동시에 잃게 될 것이다. 과거 고성장 시기에는 이러한 비효율과 문제점들이 감춰질 수 있었겠지만 사면초가에 갇혀버린 지금의 우리 경제와 기업들에는 매우 버거운 짐이 되고 있다.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선 정부가 시장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하고, 이런 새로운 인식에 기반을 두고 정책 입안에 임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정책이 민간 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민간에 부담을 덜어주는지, 경제에 혁신과 창의를 발현시키는 기재가 될 것인지,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 확립에 도움이 될 것인지 등을 정책 입안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정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관료들과 정치인들이 정부 주도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하고 정책 입안과 수행 과정에 대한 투명성이 제고되어 국민들이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한편 국민들은 정부에 대해 과도한 기대와 요구를 접어야 한다. 만약 이런 시각의 변화가 실현되고 그에 따른 정부 시스템 변화가 이어진다면 자연스레 정부의 권력이 축소될 것이고 관피아 문제도 점차 사라질 것으로 본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