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간 재위하며 스페인 민주화에 많은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은 후안 카를로스(76) 스페인 국왕이 퇴위를 결정했다고 BBC가 2일 보도했다.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는 “카를로스 국왕이 퇴위 의사와 함께 왕위 승계 절차에 착수하겠다는 뜻을 알려왔다”며 “후계자는 카를로스 국왕의 아들인 펠리페(45) 왕세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라호이 총리는 즉위식이 언제 열릴지 언급하지 않았다.
1975년 11월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사망한 뒤 즉위한 카를로스 국왕은 프랑코 총통이 직접 선정한 후계자인데도 스페인 민주화에 많은 역할을 했다. 우익 보수세력이 1981년 의회를 습격해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을 때도 카를로스 국왕은 군 지휘관을 소집해 군부의 동요를 막고 대국민 연설로 쿠데타를 저지했다.
국가가 어려울 때마다 중심을 잡아줘 스페인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국왕으로 여겨졌다. 2007년 여론조사에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소설 ‘돈키호테’를 쓴 미겔 세르반테스를 제치고 가장 위대한 스페인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카를로스 국왕의 인기는 유럽을 강타한 재정위기와 함께 하락세를 보였다. 구제금융을 받은 스페인이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2012년 아프리카 보츠와나에 코끼리 사냥 여행을 떠났다가 역풍을 맞아 공개 사과문을 발표했다.
여기에 국왕의 막내딸인 크리스티나 공주 부부가 600만 유로(약 90억원)의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수사를 받자 왕실에 대한 인기도 추락했다. 2012년 11월 왼쪽 엉덩이에 이식한 인공관절 부위가 감염돼 여러 차례 수술을 받으면서 건강이 악화된 것도 퇴위 이유로 보인다.
한국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1996년 김영삼 대통령의 초청으로 국빈 방한한 적이 있으며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스페인을 방문해 카를로스 국왕과 만난 적도 있다. 펠리페 왕세자는 지난해 9월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하계올림픽 유치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등 아버지를 대신해 왕실 공식 업무를 소화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
스페인 민주화의 상징 카를로스 국왕 물러난다
입력 2014-06-03 03:35 수정 2014-06-03 0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