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임대 ‘한남 더 힐’ 무슨 일이…

입력 2014-06-03 03:35 수정 2014-06-03 04:32
3.3㎡(평)당 분양가 최대 6000만원(한국감정원 평가). 100평형 임대료는 보증금 25억원에 월세 429만원. 내로라하는 사회 지도층과 부유층이 사는 서울 남산 자락의 '한남 더 힐' 아파트에 '전(錢)의 전쟁'이 한창이다. 정부까지 나서 중재에 나섰지만 분양가를 더 받으려는 건설사와 더 낮은 가격에 아파트를 소유하려는 세입자 간 싸움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감정평가업계의 밥그릇 싸움까지 겹치면서 그들만의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

◇국토부, "건설사·세입자 모두 루저(loser)"=국토교통부는 2일 한남 더 힐의 적정 감정평가액에 대한 타당성 조사 결과 세입자나 시행사 측의 감정평가 결과가 모두 부적정한 것으로 판정됐다고 밝혔다.

한남 더 힐은 2011년 임대아파트로 분양된 뒤 지난해 분양 전환을 앞두고 분양가 산정을 위해 세입자 측과 시행사 측이 따로 감정평가를 벌였다. 세입자 측 의뢰를 받은 감평사는 600가구의 평가총액을 1조1699억원으로 산정한 데 비해 시행사 측 감평사는 2조5512억원이라고 밝히면서 고무줄 감정평가 논란이 시작됐다. 가장 작은 87㎡형의 경우 6억4565만원(세입자 측)과 9억8679만원(시행사 측)으로 차이가 3억4114만원에 달했고, 가장 넓은 332㎡형은 각각 29억2160만원과 79억9215만원에 평가돼 격차가 무려 50억7055만원이나 벌어졌다.

이에 세입자 측은 지난해 말 국토부에 적정한 감정평가를 의뢰했고, 국토부는 이날 한국감정원의 타당성 조사 결과 적정 가격은 1조6800억∼1조9800억원이라고 밝혔다. 양측 모두 자신들에 유리한 감정평가금액을 가지고 분양가 샅바싸움을 벌인 셈이다.

국토부는 양측의 의뢰를 받아 감정평가를 수행한 4개 메이저 감평사에 대한 징계절차에 들어갈 방침이다.

◇왜 싸울까?=한남 더 힐은 태생부터 편법이었다. 임대아파트는 낮은 평수의 서민용으로 짓는 게 대부분인데 채당 수십억원인 이 아파트는 임대 방식으로 지어졌다. 시행사가 분양형식을 취하면 분양가 상한제 규제를 받아 수입자재 등을 사용하는 고가 아파트로 짓기 어렵고, 임대 기간(5년)의 절반인 2년6개월이 지나면 분양가를 감정평가를 통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한 것이다.

논란은 임대 후 2년6개월이 도래한 지난해 8월부터 시작됐다. 시행사가 감정평가를 근거로 세입자에게 제시한 분양가가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판단한 세입자들이 또 다른 감평사에 평가를 의뢰했고 양쪽은 1조원이 넘는 차액에 대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에 세입자 측은 정부에 타당한 감정평가액을 산출해 달라며 민원을 넣었다.

◇누구를 위한 싸움인가=한남 더 힐은 내부 설계 구조가 복층형·테라스형 등 28개에 이르고, 철저한 경비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단지 내에 파티룸과 게스트룸, 미팅룸 등이 있고 실내·스크린 골프장, 요가와 에어로빅 등을 할 수 있는 스튜디오, 수영장 등 운동시설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용적률이 120%로 일반 아파트의 절반 수준이어서 환경이 쾌적하고 조경 면적도 36.13%로 일반 아파트의 2∼3배 수준이다.

재력을 자랑하듯 양측은 각각 감정평가를 의뢰하면서 9억원을 산정비용으로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금액이야 자기들 호주머니에서 나왔겠지만 국토부의 지시로 5개월간 적정 산출액을 평가한 감정원의 심사 비용은 나랏돈으로 충당된다. 이날 결과에 대해 국토부는 정부세종청사에서 공식 브리핑까지 했다. 일반 서민과 아무 상관없는 그들만의 갈등을 중재하는 데 국가적 역량과 혈세가 투입된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한마디로 비싼 민원이었다"고 말했다. 최근 한 은행은 시행사의 금융부채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기 위해 자체 감정평가를 한 결과 한남 더 힐의 담보감정가를 2조600억원으로 책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감정원의 적정가가 법적 효력이 없고 기준만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은행의 감정평가액을 놓고 시행사와 세입자가 원활한 합의를 봤다면 이 같은 사회적 비용은 들어가지 않아도 됐다는 지적이다.

양측의 싸움과 별개로 한국감정원과 한국감정평가협회 간 밥그릇 싸움도 한창이다. 협회는 이날 감정원 평가결과에 대해 "절차 및 내용상 여러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서종대 원장이 취임하면서 협회가 주도하던 공적 감정업무를 감정원이 빼앗아가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한 감정평가사는 "감정원이 내놓은 적정 평가액은 시행사와 세입자가 주장하는 평가액의 딱 절반 수준"이라며 "업계 누구나 알 수 있는 적정 평가액이 있는데 양측이 입맛에 맞는 감평사를 내세워 소모전을 벌인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