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현장에서-B형 간염 치료] 현실 동떨어진 보험 급여기준에 환자는 ‘이중고’

입력 2014-06-03 03:35 수정 2014-06-03 16:35

16년여를 간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는 45세 남성 환자는 건강 문제로 오래전 직장을 그만두고, 노모와 국가보조금으로 힘겹게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B형 간염 치료제를 복용했으나 간염, 지방간, 간경변으로 진행된 상태이다. 최초 라미부딘제제를 복용했으나 내성이 생겨 엔테카비르제제로 전환했다. 이후 또 내성이 생겨 엔테카비르와 아데포비어제제를 1년여간 병용(1종의 치료제만 보험적용)했으나 이 역시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1가지 약제가 보험혜택을 받지 못해 경제적 부담이 컸던 환자는 병원을 옮겨 테노포비르제제를 단독요법으로 처방받았다. 이 약을 1년여 복용한 결과 경제적 부담이 줄어든 것은 물론 치료효과도 증가했다. 문제는 최근 보험적용이 안 돼 이전에 복용했던 치료제로 다시 전환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 이 환자는 최근 정기검진으로 진료를 받으러 병원을 갔으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서 엔테카비르와 아데포비어를 처방하지 않았다고 문제를 제기해 결국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테노포비르를 47만6000원을 지불하고 처방받았다. 아픈 몸으로 경제적 활동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기검진으로 30만원, 3개월치 약값으로 47만6000원을 지출하고 보니 비용부담은 늘고, 비용을 줄이자니 효과가 없는 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너무 서글프고 억울하다고 호소한다.

환자의 치료비 부담을 줄이고자 정부는 보장성 강화 차원에서 급여화에 나서고 있지만 치료약이 있어도 뒤떨어진 급여기준 때문에 싼 값에 처방받지 못해 환자의 고통이 늘고 있다. 앞의 사례처럼 B형간염의 경우 효과적인 최신 치료제가 출시됐음에도 치료제의 보험급여 기준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해 환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의료비 지출이 증가하는 등 병과 비용의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는 비보험약을 처방받으려니 비용부담이 크고, 보험약을 처방받으려니 치료 효과를 보기 어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의료진은 환자의 상태를 최우선 고려한 치료제를 처방하지만 보험급여기준에 맞지 않을 경우 건강보험으로 청구한 진료비를 삭감당한다. 진료비를 삭감당한 의료진은 보험급여기준에 맞도록 처방을 하지만 치료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환자의 상태가 고려되지 않은 보험급여기준 때문이다.

물론 심평원이 자의적으로 삭감하는 것은 아니고, 보험급여기준의 틀에 맞춰 심사를 한 뒤 그 기준을 벗어날 경우 삭감하는 것이다. 문제는 ‘기준’이라는 것이 관련 학회의 진료 가이드라인과 치료제의 임상시험 등을 고려해 마련되지만 빠르게 진화하는 치료효과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2년 출시된 테노포비르 성분의 치료제이다. 출시 이후 1년여 동안 환자들에게 테노포비르 단독요법으로 처방한 경우 심평원으로부터 전면 삭감됐다. 치료제 내성 환자가 많은 국내 B형간염의 경우 ‘내성치료는 병용요법을 해야 한다’는 것이 표준 치료였다. 최신 치료제가 출시될 경우 새로운 기준을 마련해야 하지만 국내의 임상적 근거를 요구하며 현장 의료진의 의견보다는 이 같은 표준 치료 기준만을 적용한 것이다.

의료현장에서는 만성 B형 간염으로 치료를 받는 환자들의 단기간 바이러스 반응에 국한해 전문가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급여정책을 펴고 있다고 지적한다. 테노포비르 단독요법이 병용요법보다 건강보험 재정 지출을 줄이고 치료 효과를 보장함에도 심평원이 급여기준에 벗어난다는 이유로 의료 현장에서 도입하는 것을 막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테노포비르 단독투여 논란이 확대되자 지난해 9월 진료심사평가위원회가 열려 이 문제를 다루었다. 그 결과 일부 전문가들이 엔테카비르나 라미부딘 등에 내성이 있는 환자에게 테노포비르를 단독 투여할 경우 치료효과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진료는 객관적인 의학적 근거에 의해 이뤄져야 하므로 이 같은 임상적 경험을 인정할 수 없으며, 추후 임상근거자료가 축적된 후 재검토키로 했다. 현재는 임상적 근가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대한간학회는 다약제내성에서 테노포비르 단독투여 등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B형간염 진료 가이드라인을 개정 중에 있는데 김영석 대한간학회 보험이사는 “심평원이 간학회 가이드라인에서 다약제내성에 병용요법을 권고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테노포비르 단독요법은 삭감한다고 밝히지만 가이드라인에서도 밝혔듯이 이의 근거수준은 B1-B2에 해당해 매우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간경변증 환자에서 ALT 수준에 관계없이 바이러스 혈증이 있으면 항바이러스제 투여를 하는 간학회 가이드라인의 권고안도 근거수준이 B1임에도 불구하고 급여인정을 해주지 않고 있어 심평원의 심사기준이 균형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병용요법 시 두 가지 약제가 모두 급여인정을 받을 수 있지만 하나의 약제에 비해 두 가지 약제를 쓰는 것은 산술적으로도 보험재정의 지출을 증가시키게 된다”며 “물론 두 가지 약제를 쓰는 것이 하나의 약제를 쓰는 것에 비해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면 비용효과 측면에서라도 병용요법만을 권고할 수 있지만 단독투여가 병용투여와 유사한 또는 비열등한 효과를 보인다면 경제적 측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고, 치료 반응과 환자의 상태에 따라 약제를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또 “의학적 결론은 더 많은 연구가 시행되면서 수정될 수 있는데 일부는 의학적 근거가 있음에도 삭감된다”며 “비급여 처방을 통해 근거확보를 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 근거확보를 할 수 없다는 것과 동일하고, 환자에게 비급여 처방을 하면 과잉진료로 제재가 있을 것이고 급여로 처방한다면 삭감을 당하게 되는데 어떻게 전문가들이 근거를 확보할 수 있나”라며 반문했다.

조민규 쿠키뉴스 기자 kioo@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