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 희망의 씨앗을 뿌려주세요] (1) 생명의 빛을 선물합시다

입력 2014-06-03 02:33 수정 2014-06-03 04:31
서울대병원 원목 노정현 목사가 지난달 23일 병원 회의실에서 각막이식 수술로 실명위기를 이겨낸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허란 인턴기자

"제게 빛을 주신 분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요"

서울대병원 원목 노정현(46) 목사는 눈이 불편하다. 오른쪽 눈은 시력이 거의 없고, 왼쪽 눈도 0.5 정도에 불과하다. 원고를 읽기 힘들어 메시지의 내용과 맥락을 머릿속에 정리한 뒤 이를 바탕으로 말씀을 전한다.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그는 “젊었을 때 실명 직전까지 갔다가 각막이식 수술을 받고 시력을 되찾았다”면서 “시간이 많이 지나면서 시력이 저하되긴 했지만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20세 때인 1988년 군입대를 위해 신체검사를 받던 중 눈에 이상이 있으니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밀검사 결과 ‘원추각막’이라는 진단과 함께 각막을 이식받지 않으면 실명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의 시력에는 문제가 없었다. 고 3때 눈이 침침해지긴 했지만 수험공부를 하느라 그러려니 여겼는데 실명위기라니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각막이식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각막기증에 대한 인식이 희박할 때였다. 자취방에 전화기까지 놓고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초조한 기다림 끝에 90년과 91년 한쪽 눈씩 각막이식 수술을 받았다. 노 목사는 “각막기증자가 충북 음성 꽃동네에 계시던 분이라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다”면서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분을 생각할 때마다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수술 후 양쪽 눈의 경과는 달랐다. 오른쪽 눈은 기대한 수준의 시력이 나왔지만 왼쪽 눈은 시력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아 특수렌즈를 착용해야 했다. 알레르기로 렌즈를 착용하지 못해 왼쪽 눈의 시력은 희미하게 보이는 정도로 떨어졌다. 수술 후 상당한 기간 통증이 남아 있었지만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를 하는 데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 감리교신학대 신대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996년부터 2002년까지 한센병 환우들을 위한 원주 바위교회에서 시무했다. 서울 종교교회에서 부목사로 시무하다 2011년부터 서울 광림교회 파송으로 서울대병원에서 사역 중이다.

그는 “처음에 실명위기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다른 환자들처럼 ‘왜 하필 제게’라고 원망하며 물었다”면서 “지내고 보니 목회자의 길을 가서 아픈 사람을 돌보라고 하나님께서 이끄신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게 병원은 고향 놀이터와 같다. 그의 부친 노태식 목사는 원주기독병원에서 30년 이상 원목으로 섬기다 은퇴했다. 어릴 적 병원 앞마당과 영안실을 뛰어다니며 놀았고 병원 직원들과도 가족처럼 지냈다. 실명위기와 수술의 아픔을 이겨내며 아픈 이들의 마음까지 알게 된 그는 병원 목회를 소명으로 여기고 인생 후반전을 바칠 생각이다.

노 목사는 “제게서 볼 수 있듯이 각막기증은 단순히 시력을 되찾게 해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면서 “생명의 빛을 선물함으로써 값지게 살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많은 분들이 각막을 가진 채로 세상을 떠나고 있어 안타깝다”면서 “누군가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할 수 있는 각막기증이 더욱 활성화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1588-0692).

송세영 기자 sysohng@kmib.co.kr

◇이 캠페인은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 센터에서 지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