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징세편의주의는 조세 저항 부추길 뿐

입력 2014-06-03 02:33 수정 2014-06-03 04:31
조세권은 국가권력이 개별적인 반대급부 없이 국민을 대상으로 강제적으로 행사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엄정하게 집행돼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때 기획재정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2013회계연도 결산보고서’ 내용은 원칙에서 벗어나 있음을 확인케 한다.

정부가 세금과 과징금을 잘못 물려 소송을 제기한 개인과 법인에 돌려줘야 할 것으로 확실시되는 패소 충당금이 최소 1조7455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 1조147억원에 비해 1년 만에 무려 72%(7308억원) 폭증했다. 충당금은 정부 부처와 외청 가운데 국세청이 9189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국세청은 보고 대상 기관 중 가장 많은 2933억원 늘어났다.

과세 당국의 무리한 세금 부과는 국정감사를 통해 이미 드러난 바 있다. 새누리당 이한구 의원이 지난해 국감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조세심판원의 심판청구 결과 인용률(국세청 패소율)은 2013년 상반기 현재 41.7%였다. 이는 2012년 한 해 26.4%에 비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납세자가 제기한 민원 두 건 중 한 건 정도가 사후구제 를 통해 받아들여진 셈이다. 또 국세 관련 행정소송에서 국세청 패소율은 건수 기준 2011년 9.8%에서 2012년 11.7%, 2013년 상반기 12.9%로 높아졌다.

이런 현상은 박근혜정부 들어 복지 분야 등 돈 쓸 곳이 많아져 세입 예산 확충을 위한 징세 활동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실제 새 정부 출범직후 지하경제 양성화와 경제민주화 바람 등으로 세무조사 등의 강도가 훨씬 세졌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 부과하고 보자’는 징세편의주의적 발상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에게 부과된 세금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납세자라 하더라도 그 세금은 일단 납부한 다음 조세불복 제도를 통해 구제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전구제 제도인 과세전적부심 제도가 있지만 세금 규모가 크거나 관련 규정이 애매할 경우 대부분 행정소송을 통해 구제받을 수밖에 없다. 과세 당국을 상대로 힘들고 어려운 법정 다툼을 납세자 스스로 벌여야 하는 것이다.

세금은 ‘공평’과 ‘신뢰’를 생명으로 한다. 납세자 입장에서 볼 때 부과된 세금이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반발할 수밖에 없다. 과세 당국이 그 어느 정부 기관보다 언론 보도에 민감한 이유도 세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조세권은 국민의 재산권과 직결되므로 그 권리가 침해된다고 판단될 경우 거센 조세저항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 과세 당국의 무리한 행정력 발동으로 국정 전반의 신뢰가 훼손되지 않을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