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항] 가리왕산의 운명

입력 2014-06-03 02:17 수정 2014-06-03 04:31
강원도 평창군과 정선군에 걸쳐 있는 가리왕산은 아름다운 동강을 끼고 있다. 500년 이상 훼손되지 않은 원시림을 간직한 신비스러운 산은 조선시대 세종 때부터 왕실에 바치는 산삼 채취를 위해 ‘봉산’(출입을 금지한 산)으로 나라가 관리해 왔다. 산림청은 2008년 가리왕산의 핵심 구역 24.3㎢를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왕사스레나무, 분비나무, 가래나무, 주목 등의 노거목과 한계령풀, 금강제비꽃, 산마늘, 노랑무늬붓꽃 등 많은 법정 보호종이 서식하고 있다.

가리왕산 중봉과 하봉에서 시작되는 북사면에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 활강경기장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산림유전자원 보호림도 경기장 부지에 일부 포함돼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표고차 800m, 평균 경사도 17도, 슬로프 연장 3㎞’라는 활강경기장 규격을 충족시키는 곳이 가리왕산밖에 없다는 이유를 들어 강원도와 산림청은 이곳에 경기장을 건설하기로 결론 내렸다. 단 경기를 치른 후 ‘사후복원’을 전제로 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가리왕산이 유일한 대안은아님이 최근 밝혀졌다. 환경단체들은 국제스키연맹(FIS) 규정집에 ‘2Run’ 조항이 명문화돼 있음을 발견했다고 5월 14일 밝혔다. ‘2Run’ 규정은 ‘동계올림픽 개최국의 여건상 표고차 800m를 충족하지 못할 때 350∼450m 표고차 슬로프에서 두 번에 걸쳐 경기를 하고 합산해 순위를 매긴다’는 내용이다. 이를 적용하면 용평이나 하이원 등 강원도내 기존 스키장에서도 활강 경기가 가능하다. 환경단체들은 정부가 범국민적 여론을 조성해 협상만 잘 하면 활강스키장 조성에 드는 800억여원의 예산을 절감하고도 올림픽을 치를 수 있다고 말했다.

‘2Run’ 규정은 근년 들어 동계올림픽 경기 개최지마다 활강스키장 건설을 둘러싼 환경파괴 논란이 그치지 않음에 따라 최근 신설된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1972년 삿포로 동계올림픽 때 에니와 국립공원에 건설한 활강경기장의 복원이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었음을 자각한 후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는 활강경기장 출발 지점을 더 높이라는 FIS의 요구를 뿌리치고 국립공원 구역을 지켜냈다.

요컨대 친환경 동계올림픽과 가리왕산의 운명은 강원도와 정부가 마음먹기에 달렸다. 세계 언론은 소치올림픽 개막식 때 사상 최고의 비용과 날림공사 및 보호구역의 활엽수림을 포함한 환경 파괴를 지적했다. 국제기구의 요청과 자연환경 가운데 우리 정부가 어느 것을 더 중시하는지를 국민들과 세계가 지켜볼 것이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