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 새겨진 문화와 민족 코드 (7) 대한민국] 1882년 제물포항 주둔 英 수병과 한 공놀이가 시초

입력 2014-06-03 03:35 수정 2014-06-03 04:31
1882년 임오군란 직후 영국 군함 '플라잉 피시호'가 동맹관계를 형성해 가던 일본군을 지원하기 위해 제물포항(현 인천항)에 주둔했다. 영국 수병들은 항구에서 소일거리로 축구를 했다. 이를 관심있게 지켜보던 제물포 사람들은 급기야 그들과 함께 공을 찼다. 스포츠로서의 축구가 한국에 도입된 순간이었다.

◇영욕의 월드컵 도전사=한국은 축구 변방국이었다. 1954년 처음으로 출전한 스위스월드컵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한국은 헝가리, 터키, 독일과 B조에 속했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스위스 취리히에 도착한 것은 6월 16일. 대회는 이미 막이 올라 있었다. 한국은 이튿날 세계 최강이던 헝가리와 맞붙었다. 전반 10여분까지 박빙의 승부를 펼치던 한국은 페렌츠 푸스카스에게 선제골을 내준 후 와르르 무너졌다. 전반에만 다섯 골을 허용한 한국은 후반 네 골을 더 내주며 0대 9로 참패했다. 한국은 터키와의 2차전에선 0대 7로 패해 조별 예선에서 탈락했다. 서독과의 예선 마지막 경기는 열리지 않았다.

한국은 1986 멕시코월드컵부터 다시 본선 무대를 밟았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1990 이탈리아월드컵, 1994 미국월드컵, 1998 프랑스월드컵에 꾸준히 참가했지만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고배를 들었다.

한국은 2002 한일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폴란드를 2대 0으로 꺾고 마침내 본선 첫 승리의 기쁨을 맛봤다. '붉은악마'의 열띤 응원 속에 승승장구한 한국은 4강 신화를 이뤄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한국은 2006 독일월드컵에서 아쉽게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4년 후 열린 2010 남아공월드컵에선 사상 첫 원정 16강을 달성했다.

◇네덜란드인이 깨뜨린 권위주의=한국 축구 역사는 크게 2002 한일월드컵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거스 히딩크(67·네덜란드)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한국인 고유의 기질을 살려 4강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반도에 살면서 끊임없이 외침에 시달려야 했던 한국인들은 다혈질이고 정열적이며 자유분방하다. 개성과 자존심이 강한 한국인들은 자기 주장이 강하다. 이 때문에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많고 조직에 쉽게 녹아들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인의 진취적인 성향은 일제 강점기와 군사독재 시절을 거치며 억압당해왔다. 한국의 조직문화는 일본처럼 상명하복식의 권위주의적 성격을 띠게 됐다. 한국 축구도 마찬가지였다. 지도자들은 일제의 잔재인 권위주의를 내세워 선수들을 다그치기 일쑤였다. 감독의 지시는 절대적이었고, 선수들은 생각 없이 움직이는 축구 기계들이었다.

그런데 히딩크 전 감독이 이런 권위주의를 깼다. 히딩크 전 감독은 한국 축구의 권위주의와 집단주의가 선수들의 창의적인 플레이를 방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후배들이 선배들을 어려워하고, 눈치를 살피는 모습을 보고 훈련이나 경기 때 존칭을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히딩크 전 감독은 "윗사람을 공경하는 한국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하지만 축구에서는 경기 중에 선수들 간의 쌍방향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으면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히딩크 전 감독은 젊은 선수들에게 고참 선수들과 자주 얘기하라고 권유했다. 또 식사할 때도 선·후배가 섞여 먹고, 마사지를 받을 때도 선배가 먼저 받지 말고 선착순으로 받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선수들 간에 벽처럼 서 있던 위계질서가 무너지자 마침내 대표팀 플레이에 생기가 돌았다. 창의적인 축구에 목이 말라있던 어린 선수들은 한일월드컵 본선에서 그야말로 펄펄 날아다녔다.

◇즐기지 못하는 한국 축구=한국인들은 한일월드컵에서 4강에 오른 후 자신감을 얻었다. '아시아인들은 축구에선 안 된다'는 부정적인 사고방식은 사라졌고, 우리도 가진 능력을 100% 발휘하면 축구 선진국에 오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됐다. 한일월드컵이 끝난 직후 국내 프로축구 경기장은 관중으로 넘쳐났다. 그러나 흥행은 오래 가지 못했고, 관중석은 이내 썰렁해졌다.

외국의 축구 전문가들은 "한국에 축구는 있지만 축구 문화는 없다"고 지적한다. 국가대표팀 경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열광하면서 프로축구에 대해선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한국에서는 국가적 이익이 클럽들의 이익보다 우선시돼 왔다. 정부 관계자들에겐 프로리그의 인기보다 국가대표팀 성적이 훨씬 더 중요했다.

국내 프로축구의 인기가 저조한 이상 '월드컵 4강'은 그저 지나가 버린 한순간의 꿈일 뿐이다. 다시는 맛볼 수 없는 꿈이다.

마이애미=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