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과 조롱의 대상 된 정치인과 관료들… 헌신하지 않으면 신뢰 회복할 수 없어"
수백명의 경찰부대가 한 종교단체의 정문 앞에서 유병언 검거작전을 벌이고 있었다. 신도들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결사항전하고 있었다. 선정적인 보도경쟁이 일고 있었다. 그 모습은 수사나 보도가 아니라 국민들에게 뭔가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TV 방송은 세월호 침몰부터 현장의 상황을 여과 없이 그대로 내보냈다. 일부 방송은 관련자를 출연시켜 차라리 인민재판을 하는 모습이었다. 수사기관과 방송의 태도는 법치를 실현하고 공정보도를 하려는 자세가 아니었다. 나는 탈주범 신창원 사건을 맡았던 적이 있다. 신창원은 방송을 보고 경찰서에 들어가 벽의 칠판에서 검거작전 상황을 살피며 도주했었다.
이런 진정성이 의심되는 요란한 보여주기식 공권력과 언론의 모습은 전에도 있었다. 광우병 파동 때였다. 미국산 쇠고기만 먹으면 90% 이상의 국민이 광우병에 걸린다는 허위 방송이 있었다. 선동된 시민들이 광장으로 몰려나와 촛불을 들었다. 붉은 촛불의 물결은 거센 격랑이 되어 이 사회를 침몰 직전으로 몰아갔다. 대통령조차 청와대 뒷산에서 붉은 촛불의 물결을 보고 겁을 먹었다고 고백했다. 공권력이 뒤늦게 수사에 착수했다. 노조가 정면으로 막아섰다. 서민들에게는 서슬이 시퍼런 수사기관이 노조 앞에서는 맥을 쓰지 못했다. 압수수색이 장애에 부딪쳤다. 피의자들은 소환에도 응하지 않았다. 법원에서도 묵비권을 행사하며 공권력을 무시했었다.
국회의원은 불신과 조롱의 대상이 된 지 오래고 사법부도 마찬가지다. 한 대법관은 판결에 불만을 가지고 집요하게 쫓아다니는 사람 때문에 도망자가 됐다. 마음대로 다니지도 못하고 저녁에 퇴근하면 차에서 좌우를 살피다가 얼른 아파트로 뛰어들어간다고 했다. 실제로 불만을 품고 찾아온 피고에게 석궁을 맞은 재판장도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런 불신이 사회에 만연하고 있을까. 정치권이나 관료조직과 국민 사이에 마음과 마음이 흐르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우리 국민은 정이 많은 사람들이다. 세월호 침몰 사건을 보고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달려 내려갔다. 함께 아파하고 눈물을 흘려주며 피해자 가족에게 라면을 끓여주고 옷을 빨아주면서 위로했다. 밤새 달려온 한 남자는 물속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초콜릿을 던져주며 기도하기도 했다. 나라경제가 위태할 때는 금을 내놓기도 하고, 바닷가에 기름이 번지면 모두 달려가 힘을 합치기도 한다.
그러나 정권이나 권력에 대해서는 폭발 직전의 가스같이 분노가 서려 있다. 그런 상황을 이용해 모략과 거짓이 판을 친다. 거짓이 진실이 되고 진실도 침묵하면 거짓으로 변한다. 목청 높은 집단이 상황을 지배한다.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의 병역특혜 문제가 불거졌었다. 수백명의 언론사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인 검사와 진료가 이루어졌다.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그래도 색안경을 낀 의심은 남아 있다.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의 아들이 총리가 물병에 맞는 모습을 보고 한마디 했다. 그 말꼬리가 잡혀 전 국민적 몰매의 대상이 됐다. 아버지 정몽준 후보는 급하게 사과했다.
국민적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헌신이 필요하다. 총리가 날아오는 물병에 겁을 먹고 경호원에 둘러싸여 차 안으로 피할 게 아니라 물병을 던진 사람에게 다가가 두 손을 꼭 잡고 “정부가 잘못했습니다. 모두 제 책임입니다”라면서 함께 울어야 한다. 그러면 국민들 마음의 문이 그 자리에서 활짝 열렸으리라고 본다. 장관들도 현장에서 새우잠을 자며 그들의 절규를 듣고 함께 아파하며 눈물을 흘려야 한다. 유족들의 분노를 온몸에 받더라도 정직하고 진실한 대화에 나서야 한다. 정치는 차디찬 물속에 있는 내 자식 때문에 절규하는 부모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 대국민 사과를 하다가 흘리는 대통령의 눈물은 진실의 호소라고 보았다. 그런 눈물들 속에서 국민들의 황폐한 마음밭이 푸른 초장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엄상익 변호사
[여의도포럼-엄상익] 국민과 함께 진짜 눈물을 흘려야
입력 2014-06-03 03:35 수정 2014-06-03 0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