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고울 수가 있을까. 오는 11일 오후 7시30분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우면당 무대에서 제35회 춤 발표회를 여는 수당(秀堂) 정명숙(79). 공연을 앞두고 지난 주말 만난 그는 팔순에 가까운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젊어 보였다. 단아하면서도 온화한 이미지가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평생 열정을 쏟아온 춤에 대한 희로애락이 스며들어 있는 듯했다.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여중과 경북여고를 나온 수당은 어릴 적부터 춤에 빠져들었다. “신라 선덕여왕을 기리는 달밤축제 때 신비스럽고 환상적인 춤을 보고 반했지요. 중·고교 때는 학예회에서 포크댄스도 추고 음악만 나오면 덩실덩실 어깨를 들썩이고 그랬어요.” 그는 여고를 졸업한 후 미국에 가서 큰 무대를 보겠다는 생각으로 건국대 영문과에 진학했다.
스무 살에 상경한 그의 인생을 바꿔 놓은 것은 한국 전통춤의 대가 이매방(87)과의 만남이었다. 대학시절 무용학원을 다니던 그는 한 무용인에게서 이매방을 우연히 소개받았다. 그로부터 50년 세월 동안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제지간의 인연을 쌓았다. “선생님이 저를 너무 예뻐하시는 거예요. 듀엣을 추면 두 사람이 한 몸이 된 것처럼 호흡이 척척 맞았지요.”
이매방류 전통춤의 ‘뼛속 뿌리’까지 이어받겠다고 각오를 다진 그는 이를 위해 결혼도 포기했다. “사실 저를 좋아하는 남자는 많았지만 춤추기도 바쁜데 연애할 시간이 어디 있었겠어요? 고향 친구들은 제가 결혼도 안하고 춤에 미쳐 있는 걸 보고는 ‘명숙이 걔, 기생됐다더라’는 말을 하고 그랬어요. 집안에서도 ‘없는 자식으로 칠 테니 다시는 오지 마라’고 할 정도였지요.”
전통춤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인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최고의 명인이 되겠다”는 집념과 오기로 모진 세월을 견뎌냈다. 수차례 가진 국내외 공연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그에게 기회가 왔다. 1992년 미국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 섰다. “공연 당일 태풍으로 객석이 텅 비어 있는데 무대를 올리기 5분전에 관람객이 꽉 찼어요. 정말 잊을 수 없는 감동적인 순간이었죠.”
이듬해 그는 문화재청으로부터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보유자 후보(준인간문화재)로 선정됐다. 그는 “한마디로 춤이 있기에 내가 살아 있다. 존재의 이유이고 생명이고 생활의 전부”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이매방류 춤은 심오하고 다양한 맛이 나는 묘미가 있고 고도의 기술력으로 정제된 멋진 춤”이라며 “영혼을 불태워 전승·발전시키려 한다”고 강조했다.
전통춤의 대중화를 위해 힘쓴 그에게 감상법에 대해 물었다. “무용수의 감정과 호흡 등 내면을 봐야 합니다. 계속 접하다보면 감상도 할 수 있고 우리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하고 느낄 수도 있겠죠. 우리 민족은 원래 신명이 많기 때문에 감상하면 할수록 어깨춤이 절로 나고 자신도 모르게 흥에 젖게 돼요. 서로 마음을 여는 게 중요합니다.”
정부 지원이나 정책에 대한 아쉬움도 털어놨다. “다른 분야에 비해 전통춤 지원은 별로 없어요. 공연 한 편 올리려면 예산이 너무 많이 들고, 졸업해도 갈 곳이 없어 대학의 전통무용과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에요. 인간문화재도 실력이 아니라 혈연·학연·지연으로 결정되는 경우도 있어 말이 많지요.” 20년 넘게 ‘보유자 후보’ 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하소연이다.
그의 꿈은 마지막 순간까지 무대에 서는 것이다. 그는 “쓰러질 때까지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품격 있는 무용가가 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이번 무대에서는 제자들과 함께 살풀이춤, 궁중검무, 입춤, 교방무, 산조춤, 장구춤 등을 선보인다. 연출기획은 박동국 동국예술기획 대표가, 해설은 오정희 경기대 무용학 박사가 맡았다. 노익장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할 열정의 ‘명인명무’가 기대된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이광형이 만난 예인-35회 춤 발표회 여는 수당 정명숙] “춤이 있기에 내가 살아 있다”
입력 2014-06-03 03:35 수정 2014-06-03 1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