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를 시작하며
최근 수년 사이 책 읽는 사람이 늘었다. 그런데 독서량은 줄었다. 책은 펴도 꾸준히 읽지 못하는 것이다. 혼자서, 끼리끼리, 틈날 때 하는 독서에서 더 나아가 여럿이 함께, 조직적으로, 시간을 내어서 하는 독서로 변해야 하는 이유다. 직장이야말로 이런 독서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게다가 기업의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조직의 최고 자산인 직장인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는 갈수록 분명해진다.
직장인 독서는 기업의 ‘자본’이다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개관 기념으로 열리는 간송문화전에서는 신윤복의 화첩, 고려청자보다 더 가치가 있는 ‘최고의 보물’이라며 한 권의 책을 보여주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책 자체는 평범하지만 문자혁명을 일으킨 훈민정음 창제의 놀라운 비밀이 담겨 있다. 그 콘텐츠 때문에 소장자 간송 전형필은 6·25전쟁 중에도 이 책 한 권만은 품에 안고 피란을 다녔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독서는 문화자본을 상속 받는 수단”이라고 늘 강조한다. 기계 한 대보다 책 한 권이 직원들의 머릿속에 들어가서 창조하는 가치가 훨씬 더 크다. 애플은 창의의 대명사인 아이폰의 생산과 배송은 중국의 하도급업체에 맡긴다. 하지만 핵심 기능인 소프트웨어와 디자인은 본사 인력이 있는 캘리포니아에서 담당한다.
이런 이유로 책 읽는 직장인이 만들어내는 가치에 눈떠 선도적으로 독서문화를 일궈가는 기업이 늘고 있다. 대웅제약은 서울 삼성동 본사 1층 로비에 독서실을 만들었다. 우림건설은 아파트 모델하우스는 물론이고 공사현장에도 이동도서관을 운영한다. 애경그룹과 삼성그룹은 직원들의 독서 실적을 조사해 독서왕을 뽑아 시상한다.
그럼에도 대다수 직장인에게 책 읽기는 사치인 게 현실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서 성인이 독서를 못하는 이유 중 으뜸(39.1%)으로 꼽은 것이 “일 때문에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였다. 더욱이 2011년(33.6%)보다 이 비율은 높아졌다. 이유가 뭘까.
읽고 싶어도 못 읽는다
문체부의 ‘국민 독서실태 조사’를 더 살펴보면 아이러니가 있다. 1년간 책을 1권이라도 읽은 사람의 비율을 나타내는 독서율은 지난해 71.4%로 2011년의 66.8%보다 5% 포인트 가까이 높아졌다. 자기계발의 필요성과 인문학 열풍, 여기에 직장마다 지식경영을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책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하지만 성인 평균 독서량은 지난해 연간 9.2권. 2011년 조사 때보다 0.7권이 줄었다. 2007년 12.1권까지 기록했으나 그 뒤로는 계속 줄고 있다. 책을 읽고 싶고, 책을 읽으려고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책을 읽는 시간이나 양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최고경영자는 독서를 강조해도 말단의 김 대리가 책을 읽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독서하는 문화가 정착되지 못해서 일 것이다. 경기도 수원의 한 대기업 계열사 직원은 “회사 안에 도서관이 있지만 늘 비어 있다”며 “책도 잘 구비돼 있고 대출도 해주지만 모두가 야근에 시달리는 분위기 속에서 퇴근한 뒤에 책을 찾으러 들르기에는 눈치가 보인다”고 말했다.
아직도 대부분의 기업에선 책읽기가 개인의 취미생활로 간주된다. 근무시간에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하는 것은 용납이 되어도, 책을 읽는 것은 업무 외 딴짓으로 여겨진다. 직장인 독서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실제 생활에서의 실천 사이에는 이렇듯 엄청난 괴리가 있는 것이다.
출판사와 윈윈 독서 풍토 확산해야
다행히 기업 자생적으로 긍정적인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후원으로 전국 기업 독서동아리 연합회가 결성됐다. 임시회장을 맡은 고동록 현대모비스 이사는 “책 읽기는 문화융성의 핵심”이라며 “20여개 기업의 동아리가 모여 시작했는데, 전국에서 여러 기업의 모임이 가입을 문의해온다”고 전했다. 독서는 혼자의 행위에서 끼리끼리의 즐거움으로, 나아가 조직적인 동아리로 발전하고 기업의 풍토 속에 정착돼야 한다. 사무실 책상 위에 책이 펴져 있고, 프레젠테이션에서는 책이 인용되고, 주말을 앞두고 책이 손에 들려지는 게 자연스런 사무실 풍경이 돼야 한다. 직장인 독서가 습관이 되고 문화가 돼야 그 속에 기업 미래가 열린다.
국민일보는 매주 대한민국의 ‘책 읽는 직장’을 찾아가 그 기업만의 독서문화를 깊이 있게 소개할 것이다. 특히 ‘책 읽는 직장’ 시리즈는 해당 기업을 출판사와 결연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사상 최악의 불황과 씨름하는 출판계에 단비가 돼줄 것으로 기대된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책 권하는 CEO, 책 읽는 직장①] “김대리 독서량이 우리회사 힘”…기업, 독서경영 눈뜨다
입력 2014-06-02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