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화마 못 피해… 홀로 살던 장애인 숨져

입력 2014-06-02 05:05
가벼운 증상의 치매 환자에게도 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치매특별등급제’ 시행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50대 경증 치매 환자가 집에서 홀로 투병하다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며 치매와 우울증을 앓던 그는 건강보험공단에 요양원 입원신청을 했지만 증세가 가벼워 거절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31일 오전 2시쯤 서울 관악구 난곡로 다세대주택 지하 1층에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가재도구 등 170만원 상당의 재산 피해를 내고 7분 만에 꺼졌지만 이 집에 살던 서모(55)씨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난곡동 주민센터에 따르면 서씨는 2012년 2월 뇌경색 수술 이후 뇌병변 4급 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수술 후 치매 증세가 나타나 일용직 잡부 일도 그만뒀다. 같은 해 6월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매달 48만원을 받으며 생계를 이어갔다. 기초수급 신청 당시 서씨는 담당 공무원에게 “가족으로 홀어머니가 있지만 연락이 끊긴 지 오래고 결혼도 안 해 혼자 산다”고 진술했다.

서씨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장애로 일을 그만둔 뒤 방세가 저렴한 지금 집으로 이사했지만 여전히 월수입의 절반 가까운 21만원이 월세로 나갔다. 최근 몇 달간은 월세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각종 공과금과 세금도 잔뜩 밀려 있었다. 사고 다음 날 그의 집 우체통에는 건강보험료, 휴대전화 할부금, 인터넷 요금, 케이블 방송 수신료, 과태료 등 각종 독촉장이 쌓여 있었다. 5월 말까지 그가 납부해야 했던 금액은 400만원에 달했다.

그는 지난 2월 철제 침대에 불을 붙이는 등 두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해 구청의 관리 대상자로 지정됐다. 정신과 상담 과정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아 최근까지 약물치료를 받았다. 3월에는 치매지원센터에서 상담을 받았지만 치매 등급을 받지 못했다.

치매 환자는 1∼3등급으로 분류되며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등급 외’ 판정이 내려진다. 7월부터 시행될 치매특별등급제는 이런 등급 외 환자를 돌보기 위한 것이다. 서씨는 자신을 위한 제도의 시행을 눈앞에 두고 ‘나홀로 투병’ 생활을 감당치 못해 목숨을 잃었다.

그는 최근 요양원에 입원하려고 건강보험공단에 심사를 요청했지만 “노동 능력을 상실했어도 뇌병변 4급은 경증 장애에 속해 입원이 어렵다”는 대답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요양보호사가 매일 찾아가 4시간가량 상담하고 인근 교회에서 생필품 등을 제공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