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30∼31일 열린 제13차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방·안보 담당 장관들의 협력 및 의견교환의 장이라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대부분 견제와 충돌, 비난전으로 치러졌다. 동북아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드러났고 속마음을 숨기지도 않았다. 외교적 수사 대신 ‘날것’ 그대로 표현되는 독설에서는 미래 어느 시점에 터져 나올지도 모를 흐릿한 화약 냄새가 맡아질 정도였다.
◇G2 미국과 중국의 충돌=회의에서 미국과 중국은 그동안 꾹 참았던 말들을 다 쏟아냈다. 미국은 남중국해의 중·일 갈등과 관련해 일본을 거드는 식이었지만 결국은 G2로 부상한 중국의 패권을 우려한 견제였다. ‘숨어서 힘을 기른다’는 의미의 도광양회(韜光養晦)에서 벗어나 ‘할 일을 주도적으로 한다’는 의미의 주동작위(主動作爲)로 나선 중국은 미국과의 공개적 충돌을 마다하지 않았다.
포문은 척 헤이글 미 국방부 장관이 열었다. 그는 31일 회의에서 “중국은 남중국해 안정을 위협해 왔다”며 “미국은 영토분쟁에서 한쪽 편을 들지 않지만 위협과 강압, 무력시위에 나서는 국가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비난했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이 일본 편만 들고 있다’고 의심해 왔는데 헤이글 장관이 ‘중국을 반대한다’는 발언으로 이를 확인시켜 준 셈이다. 헤이글 장관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가 미·일 안보조약 적용 대상인 점도 거듭 강조했다.
중국 측도 작심하고 미국을 비난했다. 왕관중 중국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은 기자회견까지 열어 “중국에는 내이불왕비례야(來而不往非禮也·온 것이 있는데 보내는 게 없으면 예의가 아니다)란 격언이 있다”며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 입장을 밝히겠다”고 운을 뗐다. 이어 “미국 논리는 패권주의이며 위협과 협박, 아태지역의 불안정을 위해 부추기는 말들로 가득 차 있다”고 맞받았다. 왕 부총참모장은 “우리는 미국과 일본의 합창을 통해 누가 주동적으로 사건과 분쟁, 충돌을 일으키는지 분명히 알게 됐다”고도 지적했다.
외교 전문가들은 미·중의 이번 충돌을 계기로 양측의 갈등이 더욱 첨예해지고 그만큼 동북아의 긴장도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더 멀어진 중국과 일본=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30일 기조연설에서 “현상 변화를 하려는 움직임은 강한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지금은 평온한 바다를 되찾도록 지혜를 쏟을 때”라고 말했다. 회의에 참석한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방위상 역시 중국을 겨냥해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에 강하게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연설 직후 한 중국 측 참석자가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수백만명이 일본군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런 사람들의 넋에 대해선 어떤 입장이냐”고 따졌다고 도쿄신문이 전했다.
양측은 식사자리에서도 충돌했다. 이날 밤 만찬장에서 오노데라 방위상은 왕 부총참모장에게 “중국과의 안보 관련 협상이 회복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왕 부총참모장은 “요청은 잘 들었지만 방금 아베 선생의 강연 내용은 함사사영(含沙射影·몰래 남에게 해악을 끼친다는 뜻) 식으로 중국을 비난했다”고 쏘아붙였다.
이튿날 열린 안보 분과회의에서는 스기야마 신스케 일본 외무성 심의관이 중국의 동·남중국해 유전탐사를 거론하며 국제법 준수를 요구했다. 하지만 중국은 “일본부터 고래잡이 중단으로 국제법을 준수하는 본보기를 보이라”고 꼬집었다.
◇냉랭한 한국과 일본=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 방침과 관련해 “이를 시행하는 지리적 한계는 우리 작전구역 밖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집단자위권은 평화헌법을 준수해야 하며, 이 문제만큼은 역사적 경험도 있기 때문에 지역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장관은 북·일 납치자 재조사 합의와 관련해선 “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한·미·일은 협의해야 한다. 그걸(납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도 투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차원의 대북 독자제재 해제 방침에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해석된다.
손병호 이제훈 기자 bhson@kmib.co.kr
이해관계 따라 작심 충돌… 동북아 대화 테이블에 ‘전운’
입력 2014-06-02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