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로펌에 둥지 튼 관피아 폐해도 다잡아야 한다

입력 2014-06-02 05:05
팔순을 바라보는 이모(78) 전 금융감독원장은 금감원을 퇴직한 뒤 10년째 법무법인(로펌)에서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세청 조사국장과 재무부 세제실장을 지내 기업들의 송사 의뢰가 들어올 경우 해당 부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 로펌 입장에선 매달 수천만원에서 억대 월급을 줘도 아깝지 않다. 총리 후보에서 낙마한 안대희 전 대법관처럼 다시 권력기관에 재임용될 가능성도 있어 로펌으로선 남는 장사다. 세월호 참사로 ‘관피아(관료 마피아)’ 적폐를 도려내기 위한 대수술이 진행 중이다. 차제에 로펌에 둥지를 트는 관피아 악습도 뿌리 뽑아야 한다.

국내 10대 로펌에서 고문으로 일하는 경제 부처 출신 전직 관료가 177명에 달한다고 한다. 1개 로펌당 평균 18명가량의 전직 관료들이 득시글대고 있는 꼴이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엔 66명의 관료 출신들이 있다. 탐욕에 눈 먼 우리나라 공직자들의 민낯을 보여주는 부끄러운 수치다. 공복(公僕)들이 공직생활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국가 발전에 기여할 생각은 하지 않고 감투를 팔아 제 배 불리는 데만 혈안이 돼 있으니 안타깝다.

로펌에서 활동하는 관피아의 폐해는 심각하다. 국세청 관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출신들은 로펌에서 대정부 로비 창구 역할을 하며 기업들의 아픈 곳을 해결해주는 해결사 노릇을 하고 있다. 인맥을 통해 기업들의 세금이나 과징금을 줄여주고, 정부의 제재를 비켜갈 수 있도록 방패막이 역할을 한다. 국세청이나 공정위가 기업에 거액의 세금이나 과징금을 부과했다가 로펌과의 소송에서 지는 사례가 잇따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터다. 경제부처 장차관을 지낸 사람들이 민·관 유착 고리 역할을 하면서 자신들이 현직에 있을 때 만들어놓은 법과 제도를 무력화시키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퇴직 공무원의 취업 제한을 강화한 공직자윤리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허점이 많다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취업 제한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취업을 제한하는 기업 수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프랑스는 공무원 퇴직 후 5년간 유관기관에 취업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공무원연금을 박탈하거나 2년까지 실형을 받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전직 공무원이 재취업한 뒤 퇴직 전 담당했던 업무와 관련해 대정부 활동을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도 퇴직 공무원들과 그들이 몸담았던 기관의 현직 공무원들의 접촉을 투명하게 관리해 비리가 싹틀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유명무실한 공직자윤리위원회 재취업 심사도 책임 있는 독립기구에서 다루도록 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