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지호일] 외과수술식 수사

입력 2014-06-02 05:05
외과수술식 공격(surgical strike)이란 스텔스 전폭기와 초정밀 미사일이 군사 전략의 핵심이 된 현대전(戰) 용어다. 외과의사가 특정 부위만 수술하듯이, 첨단 센스를 장착한 무기로 목표물을 신속·정확하게 타격하는 국부 공격을 뜻한다. 1981년 6월 이스라엘 공군이 1100㎞를 날아가 이라크의 오시라크 원자로를 기습 폭격한 이후 새로운 작전 방식으로 주목받았다.

미국은 2003년 3월 이라크 바그다드를 최초 공습할 때 대통령궁과 정부청사 등 소수 목표물에 대한 제한적 폭격을 했다. 미 언론은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는 전쟁’이라며 외과수술식 공격의 효능을 강조했다. 한반도에서 북핵 위기가 높아질 때도 북한 핵시설을 수술하듯이 도려내는 정밀 타격이 거론돼 우리를 살 떨리게 했다.

언제부턴가 한국 검찰도 외과수술식이란 말을 차용해 쓰기 시작했다. 주로 표적·저인망식·먼지털이식 수사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활용됐다. ‘있는 것, 없는 것’ 모두 헤집던 예전의 특수수사 관행에 대한 반성적 표현이기도 했다. 2005년 두산그룹 총수 일가의 비자금 수사 보도자료에 이미 “외과수술식 수사를 통해 기업과 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화했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2009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는 검찰 수사 방식의 개혁을 말할 때마다 단골 메뉴로 쓰였다. 김준규·한상대·채동욱 검찰총장에 이어 현재의 김진태 총장까지 외과수술식 수사를 선약했다. 김 총장은 취임 때부터 ‘환부만을 정확히 도려내, 사람을 살리는 수사’를 유난히 강조했다. 대표적 ‘칼잡이’로 꼽히면서도 주류 특수수사 방식에 회의적이었던 그의 평소 ‘수사론’도 영향을 미쳤을 터다.

그런데 최근의 ‘관피아’ 수사는 외과수술식보다 진격전, 전면전에 가까워 보인다. 정확한 제보와 정보 수집, 기초 조사 같은 외과수술식 공격을 준비할 겨를도 없이 대통령으로터 개전(開戰) 명령이 떨어졌다. 전국 검찰은 부랴부랴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동시다발적 작전 수행에 나섰다. 성과에 쫓기면 무리한 수사가 양산될 위험성도 있다. 유병언 일가 수사 역시 전개 방식만 놓고 보면 하명에 따른 표적수사의 성격이 없지 않다. 다만 여론은 지금의 검찰 수사 양상을 탓하지 않는 분위기다. 세월호 침몰로 드러난 유씨 일가의 각종 비리와 관료들의 무능, 특권, 검은 공생 관계에 대한 분노와 좌절감이 크기 때문이다. 지금은 정밀 타격이든, 융단폭격이든 속 시원하게 전개되는 검찰 수사가 부디 보고 싶은 때이다.

지호일 차장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