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더불어 미국이 자유 진영의 패권국가로 등장한 이후 미국 쇠퇴론은 미국의 국제적 지위에 흠집이 생길 때마다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1957년 소련이 미국에 앞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 발사에 성공했을 때, 1970년대 초반 중동전쟁으로 인한 오일쇼크 시기, 1975년 남베트남 함락 당시, 1980년대 미·일 무역 마찰이 심각한 갈등을 불러왔을 때 미국 쇠퇴론이 예외 없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러한 위기를 겪으면서도 꾸준히 국제적 지도력을 회복해 왔다.
그러나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의 21세기판 미국 쇠퇴론은 기존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측면이 있다. 우선 미국의 상대적 위상 추락의 핵심에 중국의 부상이 도사리고 있다. 1990년 이래 정치적 이념이 다른 거대한 국가 중국은 자신의 독자적인 경제력 및 군사력 그리고 소프트 파워의 활용을 통해 미국이 쉽게 통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미국이 협력을 모색해야 하는 강력한 새로운 도전자로 부상했다. 미국이 전후에 구축한 자유주의적인 세계질서 속에서 중국이 나름대로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질서 안에서 중국은 미국을 포함한 서방세계에 대해 지속적으로 새롭고 도전적인 어젠다를 던지고 있다.
한편 초점을 미국 국내의 상황으로 돌려보면 21세기 최초의 미국 쇠퇴론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국의 ‘상대적’ 쇠퇴보다 미국 국내 문제로 인한 미국의 ‘절대적’인 쇠락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이는 지금 당장 중국이 몰락한다 해도 미국이 패권국가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국내적 기반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러한 국내적 쇠락의 핵심에는 미국 거버넌스 전반의 만성적이고 구조적인 결함과 관련된 정치적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현재 미국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국내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적 동력을 되찾아 이를 기반으로 미국의 국제적 지위를 유지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제 재건을 위해서는 민주당과 공화당 간에, 보수세력과 진보세력 간에, 그리고 다문화적인 미래세대와 백인 중심의 은퇴세대 간에 미국의 미래를 위한 정치적 합의를 통한 협력의 틀이 만들어져야 한다.
누구나 알 수 있듯 정치적 합의의 핵심 내용은 경제적 양극화 과정에서 엄청난 불비례적 이익을 얻은 최상위 계층에서 세금을 일정 수준 더 걷고, 사회보장이나 복지 등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 예산 지출을 줄이며, 국가의 미래를 위해 정부가 적절히 투자하는 것이다. 해법은 이처럼 간단해 보이지만 정당 간, 이념세력 간, 세대 간 합의 가능성은 매우 요원하다. 공화당은 극우적인 티파티 세력에 의해서 민주당과의 차별화에만 몰두해 있고, 보수세력은 증세에 대해 신경질적인 거부감을 보이며, 백인 은퇴세대는 다문화 미래세대에 대한 투자가 곧 자신들을 위한 복지재원이 줄어드는 것으로 보고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과 진보세력은 뉴딜 이래 민주당의 브랜드가 되어온 복지 및 사회보장 지출의 삭감에 난색을 표하고 있고, 다문화 미래세대는 연방정부가 은퇴하는 백인들을 위해 고민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교육 및 장기적인 사회 인프라 구축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러한 대립에 더하여 정부 및 의회에 대한 이익집단의 줄기찬 로비는 미국 거버넌스의 적폐가 되어 정치적 혁신을 방해하고 있다.
1943년 미국의 정치평론가 월터 리프만은 강대국이 국내적 재원 확보 없이 대외 공약을 남발할 경우 이는 곧 재앙적인 결과를 나을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미국이 고립주의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한다면, 미국은 지속적인 국제적 지도력 확립을 위해 무엇보다 국내 재원 배분에 대한 정치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미국은 이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국내적 혁신의 가능성이 점점 사라져가는 미국, 이것이 보다 근본적인 미국 쇠락의 요인이다.
손병권 정치국제학과 중앙대 교수
[글로벌 포커스-손병권] 미국 쇠퇴론의 안과 밖
입력 2014-06-02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