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병원은 무슨, 원인은 무슨. 평생 써먹은 몸인데 멀쩡하다면 그게 이상하지. 늙으면 다 이렇게 아프다가 가는 게야. 나 다니는 병원도 잘 본다. 늙어서 그렇다고 하더라.
어머니는 하반신에 급습한 통증으로 아주 여러 해 고통 받았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하는, 차라리 세상을 떠나는 게 낫다고 할 극심한 통증. 실제로 그 끔찍함에 세상을 버린 부부가 있어 잠시 떠들썩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정밀검사를 해보자는 자식들의 간청을 물리고 어머니는 노인들 간에 유명하다는 의원을 찾아다녔다. 새벽 일찍 떠나 주사 한 대 맞고 귀가하면 저녁인, 그런 먼 곳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처신은 임시방편밖에 안 된다. 검사하여 원인을 알면 속전속결일 텐데…. 예약을 해놔서 무조건 가야 한다는 꾀를 내는 수밖에. 순진한 어머니는 병원 예약이 집 계약 같은 건 줄 알고 위약금을 물게 될까봐 할 수 없이 상경하였다.
유인은 성공인데 병원의 복잡한 절차가 어머니를 힘들게 하고 화나게 할까봐 걱정이다. 당연히 하루에 끝나지도 않는다. 이리저리 많이 걷게 만들고도 이런저런 검사는 다음 언제 한다며 있는 대로 진을 빼는 게 종합병원이다. 에고, 보름 후에 또 오시게 생겼네. 오늘 다 끝날 줄 알았는데. 자식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어머니의 기분을 살핀다. 심신이 충분히 다 지친 어머니인데 의외로 천국 같은 표정이다.
얘, 어딜 가도 의사한테 여태 제대로 얘기해보질 못했거든. 여기가 어떻게 아프고, 요기는 어떻게 아프다는 얘기를 꼭 하고 싶은데 ‘할머니 몸이 낡을 대로 낡아서 그래요’ 그러곤 아예 입도 벙긋 못하게, 열이면 열 다 그러지 않겠니. 늙었다고 푸대접인가. 오늘 의사는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다 말해 보라고 하고, 많이 아프셨죠, 하면서 어쩜 그렇게 다정하게 다 만져봐 주고 그러니. 얘, 내가 아파도 안 아파.
아파도 안 아플 만큼 어머니는 만족했다. 병원을 전전하며 받은 서러움의 앙금, 그로 인한 분노, 마음의 상처가 한 의사의 태도로 치유됐다. 의술은 인술이라더니 환자의 말을 들어주기만 했는데도 일단 마음이 위로받은 것이다.
억울함, 답답함, 분노, 4월의 상처가 계속되는 아직 아프고 슬픈 6월.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마음을 어루만질 진심이 특히 소중하며 필요한 때다. ‘얼마나 아프고 힘드세요. 아픔을 같이할게요, 잊지 않을게요.’ 깊고 따뜻한 한 마디 한 마디 말이.
우선덕(소설가)
[살며 사랑하며-우선덕] 6월의 말 한마디
입력 2014-06-02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