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아이들 품어줄 사랑의 쉼터

입력 2014-06-02 05:05
숭실공생복지재단 직원들이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행복한 공간씨’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지난 4월 말, 서울 홍대입구 근처에 용도를 알기 힘든 독특한 공간이 생겼다. 마당에 심은 커다란 감나무가 인상적인 이곳은 얼핏 보면 동네 골목길에 생긴 아담한 카페 같다. 음료를 마실 순 있지만 이곳이 카페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40년 된 주택을 개조해 만든 이곳에선 세미나, 기도회, 지역주민 모임, 공연, 프리마켓 등 매일 다른 일상이 펼쳐진다.

사회복지법인 숭실공생복지재단(이사장 박종순 목사)이 설립한 ‘행복한 공간씨’ 이야기다.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이 듬성듬성 달린 대문엔 ‘외로운 아이들을 품는 소셜 공유공간’이란 문패가 부연설명처럼 달려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에 있는 행복한 공간씨를 찾았다.

행복한 공간씨는 2층짜리 단독주택의 2층에 입주해 있다. 1층은 숭실공생복지재단이 사무실로 쓰고 있다. 2층엔 12명이 회의나 세미나를 할 수 있는 세미나실, 만화책을 보며 쉴 수 있는 카툰룸,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거실과 야외 난간이 있다. 손님과 재단 직원들은 서서 책을 보거나 바닥에 앉는 등 집처럼 편하게 이곳을 이용했다.

행복한 공간씨의 기획 아이디어는 이경림(50·여) 재단 부회장이 낸 것이다. 이 부회장은 “누구나 와서 편히 지낼 수 있는 공간인 행복한 공간씨가 생명·평화운동, 어린이 인권 옹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 재단은 주로 고아(孤兒), 즉 외로운 아이들을 돕는 단체예요. 고아가 되는 요인은 크게 전쟁과 미혼모라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운동과 미혼모, 가출 청소녀를 돌보는 일을 이곳에서 진행합니다. 더 많은 이들에게 평화와 생명, 어린이 인권 옹호운동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서죠.”

숭실공생복지재단은 1928년 윤치호 전도사가 7명의 고아를 위해 전남에 목포공생원을 설립하면서 시작된 단체다. ‘목포 거지왕’ 윤치호 전도사와 결혼해 공생원에서 고아 3000여명을 키운 일본인 다우치 시즈코(한국명 윤학자)의 헌신이 재단의 토대가 됐다. ‘고아 없는 세상’을 꿈꾸던 이들의 뜻을 이어받아 재단은 목포공생원, 공생지역아동센터(맞벌이 가정 아이를 위한 공간), 공생재활원(장애인 돌봄 공간) 등 아동·장애인 복지사업과 각종 복지문화사업을 펼친다.

이들 가운데 재단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고아를 돕는 일이다. 최근엔 분쟁과 자연재해 등으로 발생한 전 세계 고아 1억5000만명의 권리를 신장하기 위해 ‘유엔 세계 고아의 날’ 제정운동을 펼치고 있다.

행복한 공간씨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만들어졌다. 지난 1월 고아들을 돕기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모으는 공유 공간을 만든다고 하자 각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모여들었다. 공생원을 거친 이들의 모임인 공생가족회는 밥솥과 청소기를, 한 대형 서점은 만화책 1000권을 지원했다. 건물 인테리어와 사무기기부터 곰인형, 로고 디자인까지 30여명의 자원봉사자와 단체들이 물품과 재능 기부에 참여했다.

행복한 공간씨는 고아 외에도 사랑으로 감쌀 대상을 더욱 넓힐 계획이다. 재단은 특히 매주 월요일 오후 9시부터 오전 9시까지 거리의 청소녀에게 카툰룸을 개방한다. 재단 관계자는 “가출 청소녀들이 다녀간 기록이 남는다는 이유로 시설 이용을 꺼린다는 점에 착안, 우리는 아무것도 묻거나 기록하지 않고 쉴 곳을 내주기로 했다”며 “불가피하게 성매매에 몰리는 이들이 조금이나마 줄어드는 데 기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평범한 사람들도 이곳에서 안식을 찾을 수 있다. 행복한 공간씨를 관리하는 문화사역자 김재욱 목사는 이곳을 ‘모든 외로운 사람이 쉴 수 있는 곳’이라고 정의했다.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 대부분이 이웃 주민이나 행인들이에요. 이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실제적으로 고아는 아니지만 고아 같은 마음으로 사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이곳이 외로운 모든 이들의 마음을 안아줄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공생원 출신이지만 연고가 없는 공생가족회원들도 갈 곳 없는 명절 등에 이곳에 머물면서 외로움을 달랠 수 있다.

행복한 공간씨의 메뉴판에는 가격이 없다. 그저 메뉴판을 보고 먹고 싶은 메뉴를 재단 직원에게 주문하면 된다. 계산도 양심에 맡긴다. 대신 재단은 ‘쩨데까’란 나눔 항아리를 만들었다. 히브리어로 ‘공의’란 뜻이다. 손님이 자율적으로 지불한 음료나 간식 값을 모두 재단의 고아사랑기금으로 쓰기 위해서다.

혹시 사람들이 모두 공짜로만 이용하려 하지 않을까. 이 질문을 들은 이 부회장은 유쾌하게 웃었다. “한편으로는 걱정되는 게 사실이죠. 아직 수익은 전혀 없지만 하나님이 주신 선한 마음을 믿어요. 그저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나눔 가치를 공유하고 외로운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협업이 이뤄지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