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우체국-태국 김도연 선교사] 사고 뒤에는 늘 ‘받는 급료’에 족한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입력 2014-06-02 05:05
세월호 참사는 태국 언론에서도 일어나선 안 될 일이라는 지적과 함께 크게 다뤄졌다. 사진은 태국 북부 도시 치앙라이에 살고 있는 아카족 할머니.
세월호 참사는 태국 언론에서도 일어나선 안 될 일이라는 지적과 함께 크게 다뤄졌다. 사진은 태국과 미얀마 국경 인근 매싸이 지역에 거주하는 아카족 사람들이 전도지를 꼼꼼하게 읽어보는 모습.
김도연 선교사와 부인 김은주 선교사.
한국에서는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국민 모두의 가슴에 아직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 같다. 이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가슴도 멍든 것처럼 아프고 아리다.

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주위의 태국인들이 한국 사람인 나를 만나면 세월호 참사에 대해 물으며 위로를 하곤 한다. 한동네에 사는 쿤뼘은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전화를 해 왔다.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김 선교사님. 한국에서 배가 참몰했다는데 김 선교사님 자제 분인 온유와 충성이, 그리고 다른 가족들은 모두 괜찮습니까?”

쿤뼘의 걱정어린 전화를 받으면서 많은 위로와 힘이 됐다. 함께 생각해 주고 함께 느껴 준다는 것이 이렇게 고맙고 든든한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 대한 태국 신문 네이션의 언급은 참으로 우리 한국 사람을 부끄럽게 한다.

내 마음을 아프게 한 내용은 대략 이렇다. ‘한국의 국민소득 수준으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피해자 가족들이 있는 진도체육관의 모습은 태국에서 홍수가 있었을 때의 피해자 대피소 모습과 거의 다를 바가 없다.’

태국인들의 눈에 사고에 대응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이 참 한심해 보였나 보다. 휴대전화를 만드는 나라, 차를 멋지게 만드는 나라, 한류의 나라 정도 되면 피해자 가족들이 있는 곳도 좀 더 그럴 듯할 줄 알았나 보다. 태국인들에게 실망을 안겨드렸다면 이 지면을 빌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특히 ‘한국의 국민소득 수준으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고가 일어났다’는 태국 현지 언론 보도는 참으로 가슴을 쓰리게 한다.

대한민국의 국민 수준을 속속들이 들키고 만 것 같아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동안 만나는 태국 사람들이 “일본 사람이냐, 아니면 중국 사람이냐”고 물으면 “한국 사람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는데…. 그 당당함이 이제 뻔뻔함으로까지 다가온다. 선진국이 되는 것은 정말 힘든가 보다.

기도가 절로 나온다. 나는 이번 참사를 보면서 선진국이 되려면 경제적인 성장과 함께, 도덕적 책임의식의 수준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교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면 안 된다. 교회에서도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 세상을 인도해야 할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수준을 알 수 있는 척도는 무엇일까. 바로 성경 말씀이다.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라는 아모스 5장 24절 말씀을 꼽을 수 있다. 정의가 막히고, 공의가 가려진다면 그 나라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교회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의와 공의는 나라를 지탱하고 교회를 세우는 기둥이요 뼈대이기 때문이다.

정의와 공의가 가려지는 믿음은 이미 믿음이 아니다. 잘못됐다면 잘되도록 바로 잡아야 한다. 성경은 이것을 ‘회개’라고 부른다. 그리고 ‘복음에 합당한 열매’라고 한다.

사도 요한이 이 말을 할 때 사람들이 몰려와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요한은 이렇게 답했다. “네가 받는 급료에 족한 줄로 알라.”

이게 무슨 말인가. ‘받는 급료’는 합법적인 것이다. 그러나 ‘받는 급료’에 족한 줄 모르면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 늘 터지는 사고의 뒤에는 ‘받는 급료’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받는 급료’에 만족하지 못하는 회사의 높은 분들과 직원들, ‘받는 급료’에 만족하지 못하는 관리들이 있다. 이들이 ‘받는 급료’에 만족하지 못해 저지르는 불법에 적지 않은 희생자들이 고통을 받는다.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해서, 결국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안타깝게도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리스도인이 불법을 저지르면 되겠는가. ‘받는 급료에 족한 줄 아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맺어야 하는 ‘복음에 합당한 열매’가 아닐까. 그것이 세상에 하나님의 법을 물같이, 하나님의 정의를 하수같이 흐르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또 선교사이고 목사다. 하루 24시간 중 하나님보다 더 많이 생각하는 것이 있는지 자문해 본다. 내 마음속에 하나님보다 더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나는 ‘불법’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다.

하나님 한 분으로 족한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전능하심을 믿는다면 ‘받는 급료’에 족한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내 삶과 사역에서 ‘받는 급료’가 부족하다면 하나님께서 더 채우시든지, 아니면 ‘받는 급료’에 맞게 하실 것이라고 믿는다.

은행 잔고에 따라 감정이 좌우되고 인격이 결정된다면 우리는 얼마나 초라한 사람들인가.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또 무시해야 한다.

성경은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잊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내게 힘을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내게서 힘을 빼앗아 갈 수 있는 존재도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족한 줄 모르면 예수님이 보이지를 않는다. 우리가 가진 것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일 때, 비로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예수님 한 분뿐임을 알게 된다. 하나님에게 얻을 수 있는 것을 사람에게서 얻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해야 세상에 대한 기대감과 미련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보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하나밖에 없는 늦둥이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하나님께 드리려 할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막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아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못 박히게 하신 것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은 믿지 않고 신뢰하지 못할 때가 많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위해 “너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주었는데 더 주지 못할 것이 무엇이냐”라고 말씀하신다. 내게 있는 것에 족한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 한 분으로 족한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주시는 것을 받을 수 있다.

지난주 태국인들을 향한 설교에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선포했다. 성령의 인도함에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은 9가지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9가지 열매는 사랑과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이다. 9가지 열매 중에 없어도 되는 것이 있을까.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에게서 9가지 열매는 다 중요하다. 다 중요하고 꼭 있어야 하는 열매이지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절제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9가지 열매 중 마지막에 ‘절제’의 열매를 두신 하나님의 뜻이시다. 태국인들이나 한국인들이나 절제되지 못한 사람들의 삶은 함께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공동체를 어렵게 한다. ‘절제’는 ‘족함’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족한 줄 알고 절제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이고 그리스도인의 참된 길이다. <끝>

김도연 선교사 △1961년 서울 출생 △2003년 서울장신대, 2005년 장신대 신대원 목회연구과정 졸업 △2005년 장기 선교사로 태국 도착 △2007년 예장통합 서울동남노회에서 목사안수 △2012년 태국 순회선교센터 창립 △현재 태국순회선교사역, 태국어성경무료보급, 태국어 전도자료 무료 보급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