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손수호] 기자 구보씨의 시끌벅적한 하루

입력 2009-10-22 00:29


방에서 나와 마루 끝에 놓인 구두를 신고, 문간으로 향했다. "일즉어니 들어오세요." 2009년 시월 중순 어느 날 아침에 들은 첫 소리였다. 기자 구보는 지하철을 향해 걸으며 아내에게 단 한마디 "응!" 하고 대답하지 못한 것을 뉘우쳐 본다.

일찍 나섰지만 제 자리를 찾지 못한다. 하나 남았던 좌석은 그보다 바로 한 걸음 먼저 차에 오른 젊은 여인에게 점령당했다. 그 여자는 자기의 무릎 사이에다 양산을 놓고 있었다. 어느 잡지에선가 구보는 그것이 비처녀성을 나타내는 것임을 배운 일이 있다(라고 박태원이 썼다).

지하철이 왕십리에 이르러 승객이 우르르 타고 내리는 시간에 기관사가 말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동대문운동장과 광화문에서도 같은 말이 반복되었다. "너나 행∼복하시오!" 구보는 그래놓고 오전 근무 시간 내내 대범하지 못한 자신을 꾸짖었다.

"엇 옵쇼!" "설렁탕 두 그릇만 주…." 직장인이 대개 그렇듯 구보도 점심 시간이 좋다. 국민권익위원장이 권하지 않아도 5000원짜리가 많다. 점심 값의 심리적 마지노선은 밥집 주인들이 잘 안다. 식당에는 대낮부터 케이블 TV가 돌아가고 있다. 드라마 속 여인의 앙칼진 소리가 동료와의 대화를 방해한다. 밥을 먹고 나오니 귀가 멍멍하다.

"떠들지 않으면 외로운가, 소란스런 도시는 이미 개명하지 않은 것이니…"

소리는 곳곳에 매복하고 있었다. 산책길의 공원에서 방송을 해댔다. 그냥 음악을 틀어주는 것도 아니고, 전날 끝난 코리안시리즈 기아와 에스케이 경기를 해설하고 있었다. 세상에, 온당한가. 당나라 시인 이상은의 6가지 '살풍경'이 떠올랐다. 샘물에 발 씻는 '淸泉濯足', 꽃 위에 빨래 말리는 '花上乾裙', 집이 등져 산세를 못보는 '背山起樓', 거문고 태워 학 삶아 먹는 '焚琴煮鶴', 꽃 두고 (술 아닌) 차만 마시는 '對花嘗茶'. 마지막이 딱이다. 소나무 숲에서 쉬고 있는데 사또 행차 외치는 '松下喝道'. 오후 내내 공원 DJ의 성가신 멘트가 귓전에 맴돌았다.

구보는 저녁 시간 광화문에서 벗과 만나기로 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도 조용하지 않았다. 편의점 내부에 설치된 TV가 바깥으로 소리를 내던졌다. "아이 러브 지에스 이십오!" "아이 엠 유어 에너지!" 영화와 상품광고가 잇달아 나온다. 행인이 저 광고를 들어야 하나.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내린 곳은 한 술 더 떴다. "263번 버스가 전 정류소를 출발하였습니다." 5분 기다리는데 열다섯번 같은 내용이 반복됐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설도 아니었다. 정작 263번 버스가 왔을 때는 도착 사실을 알리지 못했으니까.

벗과 저녁을 나누었다. 생태찌개를 잘하는 그 집 역시 소란스러웠다. 몇몇 사람들의 목청이 다른 밥상을 무시로 넘나들었다. 자기들 안방으로 여기는 듯 했다. 대부분 사투리를 썼다.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벗의 고민을 제대로 청취할 수 없었다.

구보는 벗과 헤어져 광화문통 그 멋없이 넓고 또 쓸쓸한 길을 아무렇게나 걸어가며 돌이켜 보았다. 런던, 파리, 베를린, 암스테르담, 도쿄 어디도 이렇지는 않았다. 시끄러우면 개명하지 못한 것이다.

구보는 빠른 걸음걸이로 거리를 빠져나왔다. 퇴근길 지하철은 더욱 시끄러웠다. 회식을 끝낸 직장인들이 객차 출입구 쪽에 모여 왁자지껄했다. 웃음소리가 컸다. 못다한 말이 그렇게 많을까. 떠들지 않으면 외로운가. 구보는 귓밥을 만졌다. 서울지하철 소음이 기준치를 넘어 난청 위험이 크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구보는 내가 서울시장이라면 소음과의 전쟁을 선포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살짝 졸았다. 시계를 보니 열한 점이 넘었다. 아내가 '일즉어니' 들어 오라고 했는 데. "생활을 가진 사람은 마땅히 제 집에서 저녁을 먹어야 할 게다." 그게 최인훈의 말이었는지 아닌지 모르겠다. 구보는 황황히 200원의 추가요금을 찍고 온통 시끄러운 밤 속에서 외마디 소리처럼 사라져 갔다.

손수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