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양기호] 한·일 정상회담에서 할 일

입력 2009-10-07 17:55


내일 방한하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일본 총리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그는 일본판 케네디 가문이라 할 정도의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1996년 민주당을 창당한 뒤 13년 이상 야당을 이끌어오면서 대단한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지난달 총리로 취임해 한계에 부닥친 일본 전후체제 개혁, 우애(友愛)외교, 동아시아 공동체 중시를 강조해 안팎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2010년 일본의 한국 강점 100주년을 앞두고 역사 문제 대응, 경제 협력과 자유무역협정(FTA) 논의,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과 한·일 양국 관계 발전 방안, 최근 6자회담 재개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급부상한 북한 문제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 내년 서울 G20 회의 등 국제 무대에서 양국 간 협력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글로벌 파트너십 추구하길

유감스럽게도 한·일 양국 간에는 장애물이 적지 않다. 당장 북·미 직접 대화와 6자회담이 동시에 추진되면서 한국과 일본은 자칫하면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중국은 북·미 대화를 견제하면서 6자회담에서 자신의 주도권을 북한에 재확인시키려 하고 있다. 경제 원조도 제공하면서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구사하고 있다. 6자회담 재개 과정에서 한·일 양국이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긴밀한 정책 공조가 필요하다.

동아시아 공동체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하토야마 총리의 주장이 한·일 관계나 동북아 평화에 긍정적인 것은 틀림없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미·일동맹 일변도로 아시아 외교를 파탄시킨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일본의 동아시아 구상은 진정한 아시아 역내 협력이라기보다 대중국 견제심리가 엿보인다. 중국이 아세안+3을 강조하는 반면 일본은 호주·뉴질랜드까지 포함시키고 있어 상호간 인식차를 드러내고 있다.

미국은 하토야마 총리가 대미 비판을 수차례 한 데다 자국의 영향력 하락을 우려하여 반대하고 있다. 한국도 뼈저린 실패 경험을 안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공동체 주장은 중국과 일본의 협력을 얻지 못했고,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 추진 등, 한·미동맹을 오가다가 결국 실종되어 버렸다.

내년은 일제의 한국 강점 100주년이다. 한국과 일본의 주요 매스컴이 연재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고, 언론 보도가 자칫하면 반감을 부추겨 양국 관계를 해치기 십상이다. 사회당 출신이었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도 한·일 합병이 당시 국제법상 합법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되지 않았던가.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쉽게 풀기에는 양국간 과거사 인식의 골이 지나치게 깊고 넓다.

그렇다면 내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어떻게 한·일관계를 풀어갈 것인가. 우선 현재의 우호적인 환경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첫째, 강제합병 100주년인 내년을 염두에 두고 양국간 정책대화를 활발히 해야 한다. 바람직한 모습은 일본이 한·일합병 100년을 사죄하는 담화를 국회에서 결의하고, 재일동포 지방참정권 법안을 통과시켜 가시적인 성과를 먼저 제시하는 것이다.



양국간 정책대화 수위 높여야

둘째, 한국 정부는 일본 외교의 지향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동아시아 공동체, 아시아 중시 외교를 지향하는 일본의 변화를 양국 관계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특히 동아시아 공동체는 한국이 이론과 정책면에서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만큼 양국이 협력해 공동의 모델을 탐색해가야 한다.

셋째, 글로벌 외교 추구라는 점에서 한국과 일본은 일치되고 있다. 한·일 양국이 활발한 대화와 협력을 통해 당면한 북한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가야 한다. 양국간 경제 협력으로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내년 G20 서울회의, 지구 온난화 방지와 저탄소 녹색성장, 개발도상국 지원 등 각 분야에서 진정 성숙된 글로벌 동반자 관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양기호(성공회대 교수·일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