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이연주] ‘평점 A’ 국감 되려면

입력 2009-10-04 17:51


오늘부터 시작되는 올해 국정감사를 앞두고 '정운찬 국정감사'니 '보복감사'니 하는 말이 신문지상을 덮고 있다. 각 당은 세종시 관련 문제나 4대 강 사업과 같은 특정 현안에 대해 집중 추궁하겠다는 전략도 밝히고 있다. 여야 간 입장차이가 도를 넘어서 국정감사가 또다시 정책국감이 아닌 투쟁의 장이 되어 파행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국정감사제도는 우리나라 국회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제도로서 1988년에 부활되어 올해 22번째로 실시된다. 국정감사는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도 유일한 고유 기능이다.

졸속 심사, 政爭 더 이상 안돼

국정감사를 통해 국회는 국정운영에서 잘못된 부분을 밝혀 국민에게 알리는 것 외에도 새로운 정책대안을 제시하고 감사 기간 동안 얻은 정보를 입법이나 예산안에 반영할 수 있다. 또 국정감사는 중앙부처뿐만 아니라 평소에 언론의 관심 밖에 있고 국민도 활동과 예산의 쓰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공단, 공사, 위원회 등 각종 준정부기관들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그동안 국정감사는 매번 의원의 성실성 문제와 전문성 부족으로 인한 졸속 심사, 특정 이슈를 둘러싼 여야 간의 지나친 정치적 공방 등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언론 보도나 국정홍보가 아니면 좀처럼 알기 힘든 나라살림의 쓰임새가 정직하고 올바른지 국정감사를 통해 속시원하게 파헤쳐지기를 바라게 된다. 그러다 보니 호통을 치며 피감기관을 쩔쩔매게 하는 의원의 모습이 부각되기도 하고, 일부이기는 하나 언론의 주목을 받기 위해 자극적인 질의를 하고 불필요한 증인을 소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국회의원이 행정부를 혼내는 것도 아니요, 행정부의 과오가 낱낱이 밝혀지는 것도 아니다. 바로 국정감사를 통해 제기된 문제가 정부 정책과 예산에 반영되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현 국정감사 제도는 국감에서 지적된 사항에 대한 조치를 국회에 보고하는 데 그치고 있다.

한국여성유권자연맹은 99년부터 270개 시민단체가 연합한 국정감사NGO모니터단에 공동대표단체로 참여하고 있는데 해마다 결과를 평가해 보면 '평점 C'에 불과했다. 그러나 국정감사의 미흡한 운영은 국회의원의 자질이나 정쟁 탓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평점 A'의 국정감사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현행 국정감사제도가 효율적인 기능을 하려면 △양적으로 지나치게 많은 피감기관 △국회의원의 국감준비를 도울 정책지원조직의 부족 △국감의 지적사항에 대한 불충분한 후속 조치 △피감기관의 무성의한 답변 △시민단체의 모니터링에 대한 부당한 불허 등의 문제들이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국민 삶의 질 높이는 게 목적

정치가 국민의 생활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짐에 따라 국정감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유권자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국정감사 모니터링에 직접 참여하는 1000여명의 모니터 단원 외에도 일반국민들은 국회 인터넷 의사중계 시스템을 통해 국감 전 과정을 위원회 별로 실시간 시청할 수 있다. 많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원·피감기관의 성실도나 파행과 같은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며 국정감사의 수준은 높아질 것이다.

풍성한 수확의 계절에 우리는 최근 기분 좋은 소식을 들었다. 내년 11월 G20 정상회의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된다는 소식이다. 과연 우리의 정치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올해 국정감사 기간에는 세계인들이 꼴불견으로 꼽는 '싸움질하는 국회'의 모습을 제발 보지 않았으면 한다. 국제적인 경제 위상에 견줄 만한 정치 선진화는 무엇보다 국회와 국회의원들의 역할과 기능에 달려 있다. 우리도 이제 대외적으로 정치가 부끄럽지 않은 선진국 국민이 되고 싶다.

이연주(한국여성유권자연맹 중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