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식물 이야기] 석산과 상사화

입력 2009-09-14 17:58


여름내 산천을 붉게 물들이던 배롱나무나 무궁화의 꽃이 시들어 떨어졌다. 이제 대개의 식물들이 열매 맺을 채비로 잠시 숨을 고르는 중이다.

이때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이 있다. '꽃무릇'이라고도 부르는 '석산'이다. 큼지막한 꽃송이와 꽃송이 바깥으로 삐죽이 뻗어나오는 꽃술이 독특한 분위기를 이루는 꽃이다. 땅 속에 몸을 숨겼다가 가을에 화들짝 꽃대를 솟구쳐 올리며 꽃을 피우는 석산은 여간 신비로운 식물이 아니다. 다양한 원예종을 선발해 키우는 이유다.

석산과 헷갈리기 쉬운 식물이 상사화(相思花)다. 꽃은 잎을 그리워하고, 잎은 꽃을 그리워하면서도 끝내 만나지는 못한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둘 다 잎 없는 채로 50㎝까지 솟아오르는 꽃대 위에 꽃을 피우는 모습이 서로 닮았다. 석산을 상사화라 부르기도 하지만, 둘은 엄연히 다르다.

수선화과에 속하는 두 식물에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꽃 색깔부터 다르다. 연한 보라색 꽃이 상사화고, 짙은 주홍색 꽃은 석산이다. 꼼꼼히 뜯어보면 생김새도 다르다. 석산의 꽃잎이 상사화보다 가늘고 깊게 갈라졌으며, 꽃술은 꽃송이 바깥으로 뻗어나와 어지러운 듯 화려하다. 그러나 상사화는 꽃술이 꽃 송이 안에 다소곳이 자리잡고 있어서 밋밋한 듯 차분해 보인다. 개화 시기에도 차이가 있다. 상사화 꽃은 7월 말쯤 피어나고 석산은 9월 중순 되어야 피어난다.

결정적인 차이는 잎이 먼저 나느냐, 꽃이 먼저 피느냐에 있다. 상사화는 봄에 잎이 돋아나고 여름에 꽃대를 올려 꽃을 피운다. 반대로 석산은 꽃이 잎보다 먼저 피어난다. 석산은 꽃이 지고 나서야 잎이 돋아 그 상태로 눈 속에서 겨울을 난다.

듣고 보면 분명한 차이를 알 수 있지만, 꽃만으로는 여전히 헷갈릴 수 있다. 그래서 눈에 담아두었던 식물을 다시 찾아보는 일만큼 좋은 일은 없다. 꽃이 시들어 떨어진 자리에 잎이 새로 나는지 아닌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번 더 찾아오기를 바라는 식물의 구애(求愛) 전략인지도 모르겠다.

식물은 결코 서두르는 사람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여유를 갖고 오래 바라보는 사람에게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가을에는 꽃 지고 돌아보는 이 없어 쓸쓸해질 석산, 한번쯤 더 찾아보아야겠다.

천리포수목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