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길―김순정] 좋은 예술,좋은 관객

입력 2009-09-08 16:04


만년의 러시아 유학을 떠난 지 10년 만에 다시 대학 연구실로 돌아왔다. 이제 영국과 러시아에서 경험하고 배운 것들을 어떻게 후학들에게 물려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동시에 나 자신의 예술 영역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로 고민하고 있다. 존경하는 옛 소련의 안무가 카샨 갈레이좁스키는 오랜 기간 무대와는 상관없는 곳으로 보내져 수위 일로 소일했다고 한다. 당의 노선에 맞지 않는다고 낙인 찍힌 예술가들의 행로가 흔히 그러했듯이.

오랜만에 무대에 복귀했을 때는 그의 넘치던 시정과 자신감이 사라져 보는 이들을 가슴 아프게 했다. 현장에서 멀어지는 것은 쉼 없는 정진을 요하는 예술가에게 가혹한 일이다. 러시아에서 돌아온 후 잠시 방황했지만, 춤을 추고 가르치는 일이 역시 천직이라고 생각했고 그 안에서 나의 열정을 찾을 수 있었다. 열 살 되던 해 남산 어린이회관 무용실에서 발레를 시작한 지 어느덧 38년이다.

무용의 신이라 불리는 바츨라프 니진스키는 10년을 배우고, 10년을 춤추고, 나머지는 정신병원에서 보내다가 생을 마감했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가장 심한 집단이 프로 발레단이라고 한다. 나 역시 그러한 국립발레단 출신이다. 발레라는 특수한 예술에 몸담는 순간 세속적인 욕망이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어느 정도 차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발레가 요구하는 엄정하고 순수한 세계로의 진입은 어렵다. 피라미드 구조를 가진 발레 세계는 겉으로는 아름다워 보이지만 사실 처절할 만큼 냉혹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

발레는 무용수의 예술이다. 무대에서 안무가의 이상을 실현시켜주는 무용가의 아우라는 공연의 성공을 좌우하는 바로미터가 된다. 몇 년 전 모스크바의 한 극장에서 파룩 루지마토프와 율리야 마할리나의 세헤라자데 2인무를 봤다. 과거 니진스키가 추었던 황금노예역을 루지마토프가, 샤리알 왕의 부인 조베이다역을 키로프의 주역이었던 마할리나가 추는 2인무를 보며 나는 전율을 느꼈다. 무엇보다 20세기 초 유럽의 발레계를 뒤흔들어 놓은 니진스키의 표현력과 테크닉이 어땠을지 짐작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아, 이런 것이 발레구나. 그때의 감동은 지금도 유효하다.

니진스키는 오늘날의 잣대로 보면 결코 완벽한 체형을 가진 무용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강렬한 눈빛과 동작의 조형성, 뛰어난 도약은 그를 유일무이한 존재로 만들었다. 춤은 그래서 무대에서 보아야 한다. 영상이나 사진이 아무리 발달을 해도 결코 전부를 담을 수는 없다. 발레는 현장의 예술이다.

최근 한국 발레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발레 문화가 대중적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발레 인구의 저변 확대와 시스템 구축이 우선이지만, 국내에서는 그 기본적인 부분이 취약하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새로운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나는 이번 학기부터 '발레와 체형교정' '무대 매너의 기술'이란 제목의 교양 강의를 개설했다. 일반 학생들에게 발레를 통해 바르고 아름다운 자세와 우아하고 품위 있는 매너를 익히게 하려는 취지에서 마련한 것이다.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질문이 쏟아졌는데, 가장 많은 것은 "저도 과연 발레를 할 수 있을까요"였다. 나의 대답은 하나다. "물론! 발레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그들이 발레리나가 되지 않더라도, 그들은 분명히 감식력이 뛰어난 발레 관객이 될 것이다. 좋은 관객이 좋은 예술가를 만들고,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낸다.

김순정(성신여대 교수·스포츠레저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