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손희준] 행정체제 개편 주체 누군가

입력 2009-08-19 17:55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15 경축사에서 언급함에 따라 지방행정체제 개편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여기에 최근 경기도 성남시와 하남시의 통합 합의는 다른 시·군에도 큰 파장을 불러오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방행정체제 개편 논의의 핵심은 무엇인가. 첫째는 현재의 도와 자치구가 자치단체로서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고 판단해 현행 2계층제를 개편하자는 것이다. 둘째는 행정구역 개편의 필요성이다. 과거로부터 지속된 현재의 행정구역이 현대 기술과 행정 수요에 비춰볼 때 시대에 뒤떨어져 자원 낭비와 중복 투자를 야기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덧붙여 정치권에서는 선거구 획정 문제, 지방에 대한 부정적 시각 시정 등과 관련해 개편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다. 그간의 지방자치가 지역 간 갈등을 증폭시키고, 지역주의를 강화했으며 쓸데없는 축제와 이벤트로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주민 의사·요구 반영돼야

특히 현재의 지방행정 단위는 세계화 시대에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고, 보다 광역화할 경우 규모의 경제효과 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지역주민들의 의사와 요구는 크게 반영되지 못해 주객이 전도됐고, 이는 아직까지 우리들 스스로 중앙집권적이며 하향적·일방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전국을 모두 똑같은 계층제로 하거나 일정 규모의 구역으로 설정하자는 것은 역시 획일주의적 발상이다. 따라서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주체는 주민이어야 하고, 지방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방식의 적용이 전제돼야 한다.

그렇다면 지방행정체제 개편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첫째, 미래의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방정부가 어떤 역할과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가이다. 지금처럼 시·군이 단순히 중앙정부가 시키는 일이나 하고, 시·도는 시어머니의 눈치나 전하는 시누이 역할을 계속한다면 국가 경쟁력 제고는 불가능할 것이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은 지방이 국가의 동반자로서 충분히 자율성과 책임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뤄져야 하며, 최근 고령화와 소자화(少子化)로의 변화는 지방정부의 역할 강화를 더욱 요구하고 있다.

둘째, 효율성 못지않게 중요한 민주성과 형평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의 문제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학교'라는 토크빌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겨우 15년에 불과하지만 지방자치가 우리 사회에서 다양성 확보와 지역 간 개발 경쟁 촉진 등 순기능도 있었다. 문제는 구역 개편의 방향이 대부분 시·군 통합과 광역화인데 이 경우 예상되는 규모의 경제 등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도 학계의 연구 결과가 일정하지 않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광역화로 인해 나타나게 될 정치적 무관심과 자치의식 및 주민참여 저하, 생활권과의 유리, 저소득 계층의 행정 서비스 소외 등은 결코 경시할 수 없다. 또한 자주 인용되는 선진국의 광역화는 이미 역사적으로 지방자치를 통한 민주주의의 공고화 이후, 효율성 확보를 위한 개혁 수단인 반면 우리는 아직 시기상조로 판단할 여지도 있다.

효율성·민주성·형평성 확보를

셋째, 현실적인 측면에서 내년이 지방선거인데 시기적으로도 촉박하다. 시한을 정하고 논의를 진행하기보다 좀더 장기적 안목에서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대한 국민들의 합의를 도출하려는 자세가 요구된다. 국세와 지방세의 배분, 보조금 등 재원 배분의 문제가 제외돼 있는 점도 현실성을 떨어지게 하는 요소다. 또한 현 정권의 선거 공약이었던 광역경제권 등 개발 의지가 있는 경우는 광역 단위 경제개발청을 두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어떠한 제도도 모든 문제를 일시에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제도 개혁을 위해서는 이해당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 역시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손희준 청주대 행정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