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김대중 위해 오늘도 두손 모으는 이희호 여사

입력 2009-08-17 18:30


한반도 평화와 민주화에 큰 업적을 남긴 김대중 전 대통령 뒤에는 기도하는 아내가 있었다. 1973년 8월 일본에서 납치됐을 때, 80년 9월 내란음모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97년 12월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등 남편인 김 전 대통령이 삶의 고비를 맞을 때마다 이희호(88) 여사는 기도로 남편을 지키고 도왔다. 2009년 8월 바로 지금, 이 여사는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 속에서 투병하고 있는 남편을 위해 여전히 기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치 아론과 훌이 전쟁의 승리를 위해 모세의 팔을 들었듯이 말이다(출 17:12). 이처럼 이 여사의 기도는 언제나 김 전 대통령이 좌절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모태신앙인이자 감리교 장로인 이 여사의 삶은 기도와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는 73년 '김대중 납치 사건' 이후 집에서 창천교회 성도들과 매주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했으며,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열린 고난 받는 자들을 위한 목요기도회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특히 고난의 시기에 새벽기도와 가족기도회를 가졌으며, 금식기도를 드리기도 했다.

"금년에 와서는 내 신앙도 해이해진 것 같아서 오늘부터 아침만은 금식하면서 기도하기로 정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기도해야 하겠어요. 응답 받는 기도를 하고자 합니다."(이희호의 '내일을 위한 기도' 중)

이 여사의 철저한 기도생활은 가족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어머니를 건강하게 그리고 흔들리지 않게 지탱해준 것은 기독교였다… 어머니는 굳건히 선 채 온몸으로 기도하셨다. 이때부터 나도 하나님 앞에 간절하고 깊은 기도를 드리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김홍일의 '나는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는다' 중)

80년 11월 이 여사가 사형을 선고 받은 남편을 면회하면서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울부짖은 일화는 유명하다. 김 전 대통령은 옥중서간집에서 당시의 이 여사 모습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고백했다.

이 여사는 지금 남편의 병상에서 성경을 옆에 두고 기도로 지내고 있다. 그는 지난 11일 이명박 대통령의 병문안 때 "기도밖에 방법이 없다. 하나님에 의지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다"고 밝혔으며, 13일엔 김대중 납치 사건 생환 기념행사를 조촐한 기도회로 가졌다. 그는 수많은 문병객들을 접견하면서도 기도의 끈을 굳건히 붙들고 있다.

남편의 석방을 간구했던 그의 기도는 병마와 사투를 벌이는 남편에게 똑같이 힘을 주고 있다. 이런 이유에선지 김 전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입원한 뒤 폐렴 악화로 호흡 곤란, 다장기 부전증을 나타내고 있지만 굳건하게 투병하고 있다. 의료진이 "치료 과정에서 환자의 집념과 의지가 대단히 강하다는 걸 느낄 수가 있다"고 전할 정도다.

박춘화 창천교회 원로목사는 "이희호 여사는 기도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며 주님이 늘 함께하신다는 아주 순수한 신앙을 갖고 계신다"면서 "가택 연금 상태에서도 혼자 기도하시며 슬픔과 어려움을 이겨 오셨다"고 회고했다.

그렇다면 오늘, 신앙의 아내가 남편을 위해 드리는 기도는 어떤 내용일까. 아마도 29년 전 기도와 비슷하리라.

"오늘도 쉬지 않고 마음과 뜻을 하나로 묶어 간절히 드리는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은 반드시 받아주실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괴롭고 피곤하시겠지만 믿음으로 강하고 담대하게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심히 어려운 일이오나 바울 사도와 같은 믿음을 가지시고 꼭 이겨내시기 바라고 이겨내실 줄 믿습니다."(1980년 11월27일 편지 중)

백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