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철수] 헌법,국민통합의 대헌장

입력 2009-07-15 18:01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된 지 61년이 되었다. 해방 후 유엔 감시 아래 총선거를 치르고, 국회가 개원해 처음 한 일이 헌법 제정이었다. 헌법 제정에 따라 정부가 수립되고 합헌정부로 세계만방의 승인을 얻었다.



그러나 헌법의 운명은 기구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꽃피는 것은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를 피우는 것과 같다'는 외국인의 비아냥까지 나왔다. 그럼에도 이제 대한민국은 민주국가로, G20 국가로 성장하였다. 이 모든 것이 건국세력과 산업세력, 민주화세력의 헌신적 노력 덕분이었다.

다만 현재의 헌정상황은 그야말로 '무규범 상태'다. 국회·정당·시민단체들이 헌법을 유린하여 민주주의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과거에는 군부 독재정권이 헌법을 파괴하여 무법천지를 만들었고, 평화적 정권교체는 생각할 수도 없었지만 국민의 헌법정신의 발로로 1987년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이후 평화적 정권교체가 다섯 번이나 이뤄짐으로써 민주정치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다시 닥친 민주주의의 위기

그러나 헌법이 지향하고 있는 대의정치는 실종되고,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 일부는 국회를 등지고 시민단체의 꽁무니를 좇아 거리투쟁을 벌이고 있다. 선량(選良)이 아니라 폭도가 되고 있다. 올바른 시민단체라면 국회의원 소환운동을 벌여야 하고 세비 반납운동을 해야 할 판이다.

헌법은 정당 육성을 위해 국고 지원까지 규정하고 있는 반면 정치권은 국민통합기능은 발휘하지 않고 국론분열과 질서파괴에 열중하고 있다. 앞서 좌파 정권은 "그 놈의 헌법"이라고 폄하하면서 대통령과 국회의원까지 헌법을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참여 민주정치라는 미명하에 거리시위 정치를 부추기는 한편 국민을 분열시켜 저소득층 80%를 위한답시고 고소득층 20%를 적대시하면서 징벌적 세금을 부과했다.

또 헌법상 권력구조를 악용하여 대통령 독식 정책을 펴 왔고, 패거리인사에 치중했다. 국회의 정부 견제권은 물론 국무총리의 장관임명 제청권이나 해임 건의권을 무시하여 정부 내 권력분립장치인 의원내각제 요소를 도외시하고 제왕적 대통령을 군림케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헌법을 무시하면서 국가경축일인 제헌절마저 공휴일에서 빼버렸다. 정치권은 5년 단임제 탓에 부정부패가 생겨나고 대통령 일가에 비운이 닥쳐 왔다고 하지만 그것은 헌법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헌법정신을 왜곡하고 권력을 남용했기 때문이다. 탈권위주의라는 미명하에 국가권력·공권력을 무력화하고 북한의 핵개발을 방조해 국가안보를 위기로 몰고 갔다.

이러한 국론분열과 정치·사회의 난맥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헌법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헌법은 국민주권주의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시민단체나 시위군중이 주권자라는 것이 아니고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과 국회의원, 공무원들이 주권을 행사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들 공무원은 한 정파의 하수인이 아니고 전체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존재들이다. 국회의원만이라도 국민의 종복·하인으로 국민 전체를 위해 행동해야 한다.

헌법정신 되살려 극복해야

우리 헌법은 기본권 존중주의에 입각해 인간의 생명, 존엄, 자유, 평등을 보장하고 있다. 자유지상주의나 평등지상주의는 우리 헌법이 용납하지 않는다. 이러한 기본권을 국내외의 적으로부터 수호하기 위해 국가권력이 존재하는 것이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 법률로 제한할 수 있도록 헌법은 규정하고 있다. 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유지를 지상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폭력으로 전복하려는 정당은 해산할 수 있고 폭도는 처벌할 수 있으며, 간첩은 사형에 처할 수도 있다. 치자와 피치자는 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수호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김철수(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