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노동일] 존엄사도 안락사도 아니다
입력 2009-07-01 18:16
'존엄사의 딜레마' '존엄사 시도 예상 밖 결과' '존엄사 판결 잘못 논란'. 최근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김모 할머니에 관한 기사 제목들이다. 한마디로 '존엄사'를 시행했는데 왜 '예상대로' 사망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번 사례를 존엄사 혹은 소극적 안락사라고 부르는 그릇된 용어 사용 때문에 빚어지는 혼선이다.
우선 '존엄사'는 판례의 진의를 잘못 전달하는 것이다. 1심, 2심, 그리고 대법원의 판결문 어디에서도 '존엄사'나 '소극적 안락사'라는 용어는 찾아볼 수 없다. 이유가 있다. 대법원 판결문이 말하듯 '소송에서 사용된 언어의 의미는 심리·판단의 내용 또는 범위와 관련하여 심중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법원 판결, 연명치료 중단일 뿐
소송에서 원고는 '사망(존엄사)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고, 법원도 '사망에 이르게 하라'고 판결하지 않았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한 헌법에 근거하여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할 수 있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고, 인정한다는 것이다. 항소심을 담당한 이인복 부장판사는 "안락사는 역사적으로 잘못 사용된 사례가 있어 오해 가능성이 있고, 존엄사라는 건 죽음의 과도한 미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았다고 설명하기까지 했다.
또한 존엄사(death with dignity)의 본래 뜻도 단순히 '품위 있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1972년 당시 미국 오리건 주지사이던 톰 매컬은 환자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며 존엄하지 않게 사망하기보다는 의사의 극약처방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게 허용하자는 주장을 내놓았다. 정치적 언어구사에 능숙한 정치인으로서 그는 충격받은 유권자들에게 '의사 조력 자살' 대신 '존엄사'라는 용어를 제시했다. "인간이 존엄사를 계획함으로써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인가? 아니면 갖가지 약과 의술을 개발하여 수명을 두 배나 연장한 인간이 신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 아닌가?"라는 도발적 언사를 통해 존엄사 인정을 주장한 것이다.
오리건 주는 1997년부터, 워싱턴 주는 올 3월부터 '존엄사법'을 시행하고 있다. 일정한 요건을 갖춘 말기환자가 의사의 처방을 받아 극약을 복용함으로써 자살하도록 허용하는 법이다. 존엄사라는 용어가 미화된 이미지를 풍기지만 실제로는 '안락사'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사용 자체를 반대한다는 종교계 일각의 주장은 이를 지적하는 것이다.
나아가 존엄사 용어 사용은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판결 이후 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의료현장에서는 날마다 유사한 고민거리가 쏟아질 것이다. 연명치료 중단의 세부적 기준 마련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를 위해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지만 '존엄사'라는 용어 사용은 이를 어렵게 만든다.
구체적 입법 과정에는 숱한 난제
연명치료 중단 후 사망에 이르더라도 이는 치료 중단 때문이 아니다. 본래 앓고 있던 질병 등으로 사망하는 것이다. 따라서 연명치료 중단은 생명을 단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무의미한 치료를 하지 않고 하나님이 정한 생명의 시한에 순종하겠다는 표시일 수 있다. 오히려 기독교적 생사관에 부합하는 행위인 것이다.
김 할머니 사례에서 보듯 삶과 죽음의 결정은 창조주의 권한에 속한다. 다만 때로는 불필요한 연명치료가 자연스런 죽음을 방해함으로써 도리어 창조질서에 반하고,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연명치료 중단은 이런 좁은 범위에서 엄격한 요건 하에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는 것일 뿐이다.
원칙적으로 연명치료 중단의 권리가 인정되었지만 구체적으로 입법절차에 들어가면 숱한 난제가 도사리고 있다. 관련 논의의 진전을 위해서도 이번 사례가 존엄사나 소극적 안락사가 아닌,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것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노동일 경희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