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종원] 국회,신뢰 회복부터

입력 2009-06-30 18:09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두고 국론이 분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국민은 심한 허탈감에 빠져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역대 대통령 중 퇴임 후 존경받는 개인으로서 자리매김한 분이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일천한 민주주의 경험과 정치적 미숙에 연유하는 바 클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대통령에게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도 있다.

혹자는 우리나라 대통령제는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기형적 제도로서 대통령은 가히 제왕적 권한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예컨대 입법부는 물론 사법부도 대통령중심의 국가권력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고시 동기나 후배가 장관이나 검찰총장이 되면 동기나 선배들은 모두 사표를 내는 해괴한 전통은 법관이나 검사들의 독립적인 기능이 마비되어 있음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대통령 중심의 제도 하에서는 아무리 큰 뜻과 포부를 가지고 국회의원이 되더라도 당명에 따라 개인적 소신에 위배되는 집단행동을 해야 할 때도 생긴다. 최근에도 비정규직법, 금융지주사법, 공무원연금법, 그리고 벤처기업육성법 등 시급한 민생법안이 산적해 있었으나 국회법상 자동 개최되어야 할 국회는 정쟁에 휘말린 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20일씩이나 표류함으로써 국민을 좌절감에 빠뜨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국회는 제헌절을 기해 대통령제의 폐단을 시정할 수 있는 개헌안을 발의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데 급급하고 있다.

내각책임제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갖는 폐단을 완화할 수 있는 대안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이 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회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불행하게도 현재 국회는 국민들로부터 가장 지탄받는 기구로 전락되고 말았다. 따라서 국회중심의 내각책임제 개헌안이 마련되더라도 국민투표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물론 국회의원 스스로도 자탄에 빠질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일반인들이 저지르면 즉시 구속될 만한 행동을 국회 내에서 집단적으로 그것도 조직적으로 가담해 가며 처절한 서글픔을 감내하였으리라 믿어진다. 그리고 당명에 따라 행동하지 않을 경우 차기선거에서 공천 받을 가능성이 희박해질 수밖에 없는 정치현실을 통탄하였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결과적으로 다수결이란 민주주의 의사결정의 기본 원칙이 존중되는 경우가 드물어졌고 결과에 승복하는 대신 장외로 진출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탈행위를 자행하는 경우가 빈번하였다.

국회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국회의원이 존경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가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현재와 같은 중앙당 중심의 국회의원 공천제는 폐기되어야 한다. 당권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공천여부가 좌지우지되면 당이 특정 법안을 무리하게 추진하더라도 국회의원이 당명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국회의 윤리위원회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국회의원으로서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부터 탈법행위에 이르는 모든 사항을 구체적으로 분류 기록하고 이에 상응하는 처벌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 스스로가 당명으로부터 자유롭게 합리적으로 의사결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라 할 수 있다. 당의 지시대로 행동했다가 의원직을 상실할 수도 있다면 당권행사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회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한 내각책임제로의 개헌 필요성을 강조하기에 앞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동시에 민생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노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국회가 시급한 민생법 처리를 볼모로 한 정쟁 위주의 파행적 운용에서 벗어나 본연의 모습을 되찾기를 진정으로 기대해 본다.

이종원(성균관대 교수· 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