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피랍 여성 사망―가족·주민 표정] “외국 봉사활동에 칭찬 자자했는데…”

입력 2009-06-16 21:14

예멘에서 피살된 엄영선씨는 대전 침신대 기독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엄씨와 1998년 자취생활을 같이 했던 신모(35·여)씨는 16일 "당시 우리 집안 사정이 어려워 방을 못 구하고 있었는데 영선이의 배려로 자취방에서 같이 지낼 수 있었다"면서 "성격이 명랑하고 정말 사려 깊은 친절한 친구였다"고 말했다.

신씨는 이어 "영선이가 예멘에서 사고를 당했다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무척 놀랐다"면서 "늘 어떻게 살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친구였으며, 삶의 열정이 있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엄씨는 대학 재학시 휴학을 두 번 했으며 입학 당시 수원의 모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고 신씨는 전했다.

엄씨는 개인블로그에서 지난해 12월 예멘 봉사단체 동료들이 깜짝 생일파티를 열어 준 일을 소개하며 "우리 팀원들은 한국인, 네덜란드인, 독일인으로 강한 유대를 갖고 있다"면서 "대부분의 동료들은 병원에서 일하며 현지인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적었다.

예멘인들과의 의사소통에 필수적인 아랍어를 배우고 있다며 8월 말에 귀국한 뒤 연말에 터키로 갈 계획이라고 미래의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외교통상부로부터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며 사실로 믿기지 않는 듯 망연자실해했다.

동네 주민들도 "젊은 나이에 혼자 외국에 나가 봉사활동한다는 얘기를 듣고 주변의 칭찬이 자자했다"며 엄씨의 피살을 애통해했다.

엄씨 아버지(63)와 여동생(31)은 이날 오전 10시30분쯤 경기도 수원시 세류동 H아파트 자택을 나선 뒤 취재진의 쏟아지는 질문에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극도로 아꼈다. 엄씨 아버지는 "경황이 없어서 지금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서울로 향하는 전철 안에서 그는 "오늘 오전 외교부에서 딸이 사망했다고 공식적으로 연락을 해 왔다"며 "여권을 만들어야 하니 외교부로 오라고 해서 가는 길"이라고 입을 열었다.

그는 "1주일 전 딸이 안부전화를 걸어 대화한 게 마지막"이라며 "잘 지내고 있고, 8월에 돌아온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이 두 번째 자원봉사 활동이었다"며 "예멘에 갈 때 위험한 곳인 줄 나도 몰랐고, 딸도 그런 얘기를 안 했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딸이 평소 봉사활동을 많이 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그런 얘기를 해 봐야 뭐하냐"며 입을 굳게 닫았다.

예멘 북부 사다에서 무장단체에 납치됐다 피살된 국제의료자원봉사단체 월드와이드서비스(WS)에서 일한 엄씨는 봉사활동을 위해 한국을 떠났다가 10개월여 만에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오게 됐다.

수원=김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