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윤철] 한예종 교육 성과도 많았다

입력 2009-06-10 21:10


국민일보 5월24일자 정진수 교수님의 기고문은 원로교수의 표현 치고는 너무 거친데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 대한 진실을 왜곡하고 있어 이 학교의 창립멤버인 한 사람으로서 발언합니다. 이 글은 학교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에서 고뇌 끝에 드리는 글임을 먼저 밝힙니다.

정 교수님이 언급하신 여러 감사 지적사항들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이의신청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감사에서 증명된 행정적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서는 저도 한예종의 교수로서 엄격히 시정을 요구할 것입니다.

"좌파든 우파든 학교만 잘 운영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하신 정 교수님의 말씀은 백번 옳습니다. 그런데 소위 한예종의 '좌파교수'들이 무슨 딴짓을 했다는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좌파 대거 영입, 사실과 달라

혹시 통섭, 협동과정 프로그램을 '좌파교수'들의 딴짓으로 말씀한 것이라면 오해입니다. '비좌파' 교수들도 함께 참여해서 혼종, 크로스오버, 다학제간(多學際間), 멀티 미디어 등 예술의 패러다임이 이동하고 있는 동시대 및 미래의 예술창작에 대비하기 위한 과정으로 개설한 것입니다.

이창동 교수가 문화부 장관에 취임한 이후 좌파 교수를 대거 영입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정 교수님이 마음에 두고 있는 좌파교수들 가운데는 이창동 교수 부임 이전에 임용된 분들이 많습니다.

"좌파들의 문제는 항상 남 탓만 한다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한예종의 모든 문제를 좌파교수들의 탓으로 전가하는 자기모순을 범하고 계십니다. 또 한예종을 비난하시면서 '하류대학'보다 못하다고 했는데, 어떤 대학이 하류대학인지요? 아직도 그런 어휘를 사용하시다니요.

이론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전에는 실천 쪽에서 이론이 파생되었지만 요즘은 이론에서 실천이 창조되는 경우도 잦습니다.

얼마 전 서울을 방문했던 리미니 프로토콜처럼 비연극인 전문가를 동원해 새로운 개념의 연극을 만들거나, 무용의 훈련이 전혀 없는 이가 안무를 하거나, 과학을 전공한 사람이 희곡을 쓰는 등 장르를 융합하거나 초월한 활동이 전경화(前景化)된 이 시대에, 한예종은 실기만 훈련해라 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수구적 교육관입니다.

또 "이론과목은 필수기초과목만 외부전문강사를 모셔다 가르치면 된다"고 하셨는데, 교양적 수준의 교육만으로 현대예술의 실천이 요구하는 이론적 깊이와 넓이를 감당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한예종처럼 다양하게 전문실기훈련이 이루어지는 교육적 환경에서 인간과 세계를 탐구하고 예술의 생산과 수용의 미학을 정리·규정·예측하는 이론교육은 실천예술가 양성에도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예종의 이론과들은 설립 초부터 문화부의 승인을 받아 실기과들과 함께 교육구조 안에 있었던 것이지요.

한예종은 교수들 스스로 만족할 만큼 성과를 거두진 못했지만 정 교수님 같은 분들이 주장하듯 교육적으로 실패하지는 않았습니다. 국내는 물론 국제 콩쿠르에서의 다수 입상 실적과 졸업생들의 활발한 창작활동이 증거라면 증거이겠지요.

교육적 자율권 서로 존중해야

이런 엄연한 사실을 애써 부정하면서까지 한예종의 교육을 실패라고 단정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교수들이 학생들을 붙잡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실기교육에 매진해왔는가?"라고 물으셨는데, 많은 교수들이 때로 밤을 새우면서 학생들을 지도했기 때문에 이만큼이나마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한예종의 많은 교수들은 여건이 더 좋은 이전의 사립대학을 떠나 교육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적을 옮긴 분들입니다. "일반대학과 똑같이 교수 폼만 잡으려는 교수들"이 아닙니다. 교수들 사이에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설령 학교의 이해가 다르다 하더라도 피차의 교육적 자율권만큼은 함께 존중하고 지켜줘야 할 헌법적 가치가 아닌가 되묻고 싶습니다.

김윤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