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길―장승헌] 명동의 낭만 꽃필까
입력 2009-06-02 21:17
주말에 명동을 산책해 본다. 친숙한 거리에는 골목마다 사람들로 가득하다. 노점상들과 길거리 쇼핑을 즐기는 시민들로 인산인해다. 부산스럽고 산만한 모습에 현기증이 날 때도 있지만,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명동은 낯설고 이국적이기도 하다. 구한말의 역사가 명동이라는 곳에 외국의 문물과 색깔을 연결하게 만들었다. 최근에는 환율의 영향으로 관광객들의 수가 부쩍 늘었다.
하루 수십만의 유동인구, 외국인(특히 일본 관광객)으로 넘치는 거리. 그런데 문화와 예술을 이야기하는 사람으로서 소비의 욕망으로 일렁이는 명동의 모습이 못마땅할 때가 있었다. 속물스럽기만 한 명동의 풍경은 대한민국 대표 거리에 어울리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 개관하는 이른바 명동예술극장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1934년 개관한 명동국립극장은 어려운 시절에도 많은 예술가들이 작품을 통해 당대의 낭만과 사랑을 노래한 장소다. 그러나 한국의 공연장은 그동안 수많은 변천을 거듭했다. 1980년부터 20세기말까지 이른바 복합문화공간 시대를 거쳐 이제는 오페라극장, 뮤지컬극장, 국립국악당 등 장르별로 특성화하며 전용극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명동극장 역시 이제는 연극전문극장으로 시민과 연극인을 위한 공적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1975년 민간 금융회사인 대한종합금융의 사옥으로 팔렸던 명동극장이 갖은 도전에도 불구하고 건물의 외형이 예전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온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정부가 1994년부터 문화예술계의 건의를 받고 국고로 매입한 뒤 3년여의 복원 공사를 거쳐 552석 규모의 중형극장으로 새롭게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명동의 상가번영회가 이번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힘을 보탰다는 사실은 오히려 문화계 인사들이 고마워 해야할 대목이다.
명동극장 개관에 즈음해 생각해 볼 것은 우리 시대의 공연장의 기능이다. 문화적인 콘텐츠 말고도 소통과 만남을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행복한 교류와 즐거운 만남이 우리의 예술을 더욱 풍성하게 함은 굳이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명동예술극장 재개관 무대에 오르는 작품은 오영진 작 이병훈 연출의 연극 '맹진사댁 경사'이다. 우리네 정서가 잘 스며있는 희극작품으로 일반 관객들로부터도 널리 사랑받아 왔다. 최은희씨를 비롯해 명동국립극장 시절 활약했던 원로배우들도 마지막 공연일인 6월21일까지 카메오로 출연한다.
상업적인 문화와 달콤한 소비처로 전락한 명동이 이제 골목 어귀의 낭만을 되찾아 서울의 명소로 거듭 태어나주기를 바란다. 연극인을 비롯한 우리 문화예술인들도 다시금 꿈과 희망을 모아 명동골목에 온기를 더해 보자.
예술의 격조와 문화의 향기는 명동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을 것이다. 그리고 유서 깊은 문화의 현장으로서 사람들에게 여유로운 표정과 따뜻한 웃음을 선사하고 나아가 명동 고유의 신선한 색깔을 담아 낼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일상이 고단했던 지난 50, 60년대, 그곳은 우리 문화예술의 산실이었고 순수와 낭만이 그득한 사랑방 문화가 있었다. 아, 명동예술극장이여, 그 시절 아름다운 만남과 소통의 공간으로 선뜻 우리를 맞아주고 친절히 안내해 주기를!
장승헌(국민대 겸임교수·공연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