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유호열] 남북 개성접촉 이후 과제

입력 2009-04-22 17:58


이명박 정부 출범 후 14개월 만인 지난 21일 남북 당국이 개성에서 처음으로 마주 앉았다. 12시간의 힘겨운 공방 끝에 성사된 남북 접촉은 북쪽의 일방적인 통지문 낭독으로 불과 22분 만에 종료되었다. 북한이 예고했던 중대사항이란 예상과 달리 개성공단 사업과 관련한 모든 제도적 특혜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것이었다.

북한의 요구 사항은 개성공단 토지 임차기간을 현행 50년에서 25년으로 단축하고, 10년으로 합의했던 토지사용료 유예기간을 대폭 앞당겨 내년부터 징수하며 공단 내 북한 근로자 임금을 중국 수준으로 인상하며 근로자 숙소를 지어달라는 것이다.

그들 주장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북한은 남북간 경협을 민족내부의 특수관계로부터 국가간 보편적 투자관계로 전환시킴으로써 보다 많은 수입을 얻고자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우리 민족끼리'의 입장에서 제공했던 각종 특혜를 일방적으로 거두어들이고 개성공단을 통해 외화수입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현재로서 북한의 진의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계약을 파기하면서까지 전면 재검토를 제기한 것에 대해 북한 내부의 다급한 사정이나 또 다른 복선을 의심케도 한다. 1년 이상 지속된 남북관계 경색과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거나 더 이상 남한 정부의 정책 변화에 대한 기대를 포기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 개성공단이 귀중한 외화벌이 창구라고 생각하면서도, 외부사조의 유입이나 배금주의 풍조를 퍼뜨려 내부 결속을 해치는 주범으로 지목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그런 와중에 김정일의 건강이 예전같지 않은 시점에 새로운 권력의 핵심으로 등장한 국방위원회 구성원들이 개성공단 폐쇄를 집단적으로 결정한 책임을 남쪽에 전가하기 위한 술수일 수도 있다.

원인과 배경이 어떠하든 이번 통보는 공단을 조성한 현대아산이나 토지공사는 물론 현지에서 조업 중인 우리 기업들에게는 당혹스럽고 착잡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현대아산과 토지공사는 우리 정부의 재정 지원 속에 기반시설 건설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었고 임차료로만 1600만달러를 북한 중앙특구개발총국에 이미 완불한 상태다. 진출한 100여 기업도 2014년까지 토지사용료 면제와 연간 근로자 임금 인상률이 5%를 넘지 않는 조건에서 투자를 결정하였기에 북한의 전격적인 통보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다.

북한은 민족끼리 원칙에 따라 김정일의 배려로 남한 기업에게 특혜를 주었다고 주장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같은 민족이기에 토목 및 기간시설 건설과 초기 투자 비용으로 수조원을 부담하면서 공단운영의 정상화를 도모해 왔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통신, 통행, 통상 등 소위 3통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았어도 참고 견디어 왔다.

중소기업의 경우 근로자의 자유로운 채용과 교육 및 해고 등 인력운영권마저 제한받으면서도 같은 동포이기에 근 4만명에 달하는 북한 근로자들을 고용해 기업을 운영하였다. 정치적 이유로 공단 출입을 임의로 제한하고 우리 직원을 임의로 장기간 억류한 채 접견권마저 불허하는 상황에서도 민족이기에 가급적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인내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안팎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정식가입 선언시기를 늦추면서까지 남북관계가 파탄나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향후 계약 재검토 협의에서 또 다시 우리 당국을 배제한 채 현대아산과 토지공사 및 진출 기업들만을 상대하거나 재검토 자체가 공단 폐지를 향한 수순밟기일 경우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 운영이나 남북관계 전반에 걸친 보다 분명하고 단호한 입장 표명을 해야 한다. 더 이상 북한의 횡포와 협박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우리 정부에 대한 국내외의 신뢰를 잃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