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길―김기태] 디지털도서관과 출판계
입력 2009-04-21 21:17
2008년 12월29일 오후, 서울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디지털도서관 준공식이 열렸다. 도서관2.0 시대 개막과 더불어 '한국을 넘어 세계 도서관 문화의 지형도를 바꿀 새로운 개념의 도서관'이 완공된 것이다. 안내 자료에 따르면 2005년 12월 착공 이후 1179억원을 들여 건물 면적 3만8014㎡(지하 5층, 지상 3층) 규모로 다국어정보실, 디지털열람실, 자동화서가 등 첨단 시설과 한국정원, 디지털북카페, 실내정원 등 자연과 인간, 정보가 함께하는 친환경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통합전산센터의 자체 테스트와 첨단 시스템의 시험운영 등 사전 준비를 거쳐 드디어 다음달 디지털도서관이 전면 개관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날 연단에 오른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상당한 양의 정보가 이제 우리 눈앞에 펼쳐질 것이며 디지털도서관이 새로운 문화와 정보의 공간으로서 세계적 명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문화관광통신위원회 고흥길 위원장은 "국민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세계 디지털도서관의 성공적 모델이 될 것을 확신한다"면서 "첨단 지식정보를 보다 빠르게 국민에게 제공해 국가 지식경제에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한상완 도서관정보정책위원장은 "세계 최초의 국립 디지털도서관인 만큼 창조적인 콘텐츠를 개발하고 발빠르게 정보를 수집해 국가 발전을 도모하자"고 격려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무엇'을 담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반듯하고 드넓은 길을 닦아 놓아도 그 길에 쓰레기를 실은 차만 오간다면 그 길은 없느니만 못한 것이 되고 만다. 디지털도서관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구축된 국립디지털도서관은 온라인 서비스 포털 시스템인 '디브러리(dibrary:digital과 library의 합성어)'를 구축해 국내 최초로 장애인·다문화 정보 등 특성화된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뒷받침돼야 할 도서관 정책은 디지털도서관을 온전히 감싸주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무려 1000억원 이상 쏟아 부은 사업의 결실인 디지털도서관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 동안 디지털 자료 납본 등을 위해 다양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보완됐고, 새로운 법안도 마련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도서관 활성화를 위한 일부 국회의원들의 입법 활동에 대해 출판계는 디지털 자료를 도서관에서 싼값에 동시다발적으로 이용하게 하면 전자출판물의 상업적 판매가 치명타를 입게 됨으로써 자칫 불법 다운로드로 고사 위기에 몰린 음반시장의 전철을 밟게 될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관련 단체들은 성명서를 내 "저작권과 디지털 출판물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법안"이라고 비난했다.
이런 정황을 잘 알기에 당시 디지털도서관 준공식에 참석했던 필자는 행사 직후 출판 전문지 '기획회의'에 기고한 글에서 "도서관 관련 고위 관계자와 유력 정치인들만 즐비할 뿐 정보의 최초 생산자인 작가를 비롯한 창작 관련 인사, 출판계 인사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창작을 담당하는 저작권자와 정보의 유통에 큰 역할을 담당하는 출판권자가 소외된 디지털도서관 준공식은 어딘지 모르게 그들만의 잔치라는 인상을 떨칠 수 없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지식과 정보의 보고(寶庫)로 거듭나려면 도서관이 활짝 열려야 한다. 2009년 5월, 저작권자와 출판권자, 도서관 운영자와 이용자 모두가 상생하는 아름다운 디지털도서관의 개관을 기대한다.
김기태 세명대 교수 미디어창작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