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광식] 원자력의 귀환

입력 2009-04-08 21:09


우리 원자력산업에 훈풍이 불고 있다. 돌이켜 보면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옛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 후폭풍과 반원전 환경주의자들의 거센 반대 속에서 세계의 원자력산업은 어렵고 추운 시절을 보냈다.

우리나라의 여건은 비교적 좋았다. 정부는 착실하게 원전을 건설·운영해 왔고, 기술도입 비용이 쌀 때 원전설계와 핵연료제조기술도 국산화했으며, 숙원사업이었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 문제도 해결했다. 사업자와 규제기관의 노력으로 큰 사고도 없었다.

최근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면서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원자력이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달 29일 독일 본에서 개최된 유엔기후변화회의에서 토드 스턴 미국 기후변화 특사는 "미국 정부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를 현재의 80% 수준으로 감축하도록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이 부시 행정부 시절 거부했던 온실가스감축을 위한 국제 규범으로 돌아오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미국에선 26기의 신규 원전 건설신청에 대한 검토가 진행되고 있다. 2030년까지는 전세계적으로 약 300기가 추가 건설될 전망이다. 우리나라도 작년 국가에너지위원회에서 2030년까지 전력 생산시설에서 차지하는 원자력시설의 비중을 현재의 26%(실 전력 생산 40%)에서 최대 41%(실 전력 생산 59%)까지 확대키로 결정했다.

훈풍은 그것만이 아니다. 국산 원전의 수출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터키·요르단 등이 원전 도입을 추진하고 있어 수주를 둘러싸고 우리나라가 미국·프랑스·일본 등과 경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원전의 이용률이 세계최고 수준이고 가격경쟁력도 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울산 미포만 지도와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들고 선박 제조 공사를 따냈을 때와 비교하면 여건은 훨씬 좋다. 일단 우리 원전수출이 하나 성사되면 그것을 발판으로 제2, 제3의 수출도 기대된다.

원전수출을 성사시키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나?

먼저 수출 추진체제를 정비하고 정부의 전폭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현재 원전수출 추진은 한국전력이 맡고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원전 회사의 노력만으로 될 사안이 아니다. 이를 '저탄소 녹색성장'의 전략사업으로 인식, 범부처적인 총력 지원을 펼쳐나가야 한다. 필요하다면 외교 차원에서 국가원수가 직접 세일즈에 나서야 한다.

다음으로 철저한 사업적 마인드가 깔려 있어야 한다. 중동은 지정학적으로나 자본조달에 있어서 불확실성이 매우 큰 시장이다. 따라서 해당국이 원하는 배수로 및 담수사업 등과 연계해 들어가거나, 우리 원전회사의 낮은 브랜드 인지도를 보완하기 위해 외국 선도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원자력안전을 위한 지속적 노력이다. 여러 나라에서 우리 원전에 관심을 갖는 것은 운전실적이 우수하고 또 그동안 사고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 원전에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수출 분위기는 급랭할 것이다. 누가 원전 사고를 낸 나라의 제품을 사려고 하겠는가?

지금까지 우리 원전의 안전실적은 그냥 얻어진 '공짜 점심'이 아니다. 앞으로도 운영자와 규제기관은 자만하지 말아야 하며 특히 원전 안전 인력을 줄여서는 안 된다.

지난달 30일 한승수 국무총리 주최로 열린 원자력위원회에서 원자력확대와 원전수출, 그리고 수입국의 안전인프라 지원 등에 대해 보고가 있었다. 어젠 우리 '원자력 반세기' 기념식이 성대하게 개최됐다. 지난 50년간 많은 것을 이룬 우리 원자력산업이 앞으로 반세기 동안도 계속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원자력 르네상스의 훈풍 속에서도 서로를 채찍질하며 함께 나아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최광식 원자력안전기술원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