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성래] 천문학의 무궁한 미래
입력 2009-04-01 17:56
천문학은 '천명의 종교'에서 시작, '하늘의 과학'을 거쳐 '우주의 기술'까지 세 단계로 진화해 왔다. 우리 선조들은 종교-과학-기술의 세 발전 단계의 첫 대목에서 항상 앞서 있었고,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많은 천문학 유물과 전통을 자랑 삼아왔다.
첨성대를 모르는 한국인이 없고 1만원권 지폐엔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와 옛 천문기구 혼천의(渾天儀)가 그려져 있다. 1442년(세종 24년)에 완성된 '칠정산(七政算)'이란 역법은 갈릴레오 갈릴레이보다 150년 앞서 우리 천문학이 세계 최고 수준이었음을 웅변한다. '칠정'이란 오늘날의 '요일'을 대표하는 일곱 개의 천체다. '칠정산'은 세종 때 선조들이 서울 기준의 천체 운동을 정확히 계산했음을 보여준다.
탁월했던 선조들의 예지
하지만 그 직후 서양 천문학은 놀랍게 발달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천문과학은 꼭 400년 전(1609년)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할 때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연고로 유네스코는 올해를 '세계천문의 해'로 선언했다. 물론 토를 달자면 근대 천문학은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내 놓았을 때(1543년) 이미 싹텄다고 덧붙일 수도 있다.
아무튼 갈릴레이의 망원경은 우주가 사람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태양에는 흑점이, 달 표면에는 산맥과 계곡이, 토성에는 고리가, 목성에는 4개나 되는 달이 붙어 돌고 있음을 처음 알게 됐다. 그리스 이래 서양인들은 우주란 완전무결한 코스모스(Cosmos)라 여겼는데 그 신화가 깨어진 것이다. 게다가 이미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란 생각이 지식층에 퍼져가고 있었으니….
새로운 우주관과 천문학은 이탈리아의 갈릴레이, 독일의 요하네스 케플러, 그리고 영국의 아이작 뉴턴을 거치며 근대과학으로 완성됐다. 1687년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은 케플러의 타원궤도설과 갈릴레이의 운동 이론을 모두 설명해 주었다.
인간의 머리가 천체 운동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바로 그 인간 이성은 앞으로 모든 자연 현상, 나아가선 사회현상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가 이성의 철학적 연구에 몰두한 것은 이런 지적 상황을 대변한다. 그리고 당연히 그 시대(18세기)를 서양에서는 '이성의 시대(Age of Reason)'로 불렀다. 물리학·화학·생물학이 이를 모델로 발달했고, 사회과학이 같은 목적을 표방하며 싹텄다. 마르크스의 유물사관 역시 그 후손의 하나일 뿐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과학으로서의 천문학은 우주의 본질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1910년대에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우주관, 1929년에는 에드윈 허블의 우주팽창설로 발전해 오늘에 이른다. 1950년대 들어선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이 하늘을 기술개발의 대상으로 급부상시켰다. 인간의 달 착륙이 실현되고 지구 둘레에는 우주선을 올려놓고 온갖 기술적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우주기술은 새로운 성장분야
지난 2월 우주개발 사상 처음으로 미국과 러시아의 위성 충돌사고가 일어났다. 지구궤도에는 10㎝가 넘는 크기의 파편이 1만개 정도 돌고 있다. 선진 각국이 로켓 개발과 우주 탐험에 적극 나서고 있는 한 하늘 위 교통사정은 앞으로 더 나빠질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우주 교통사고는 우주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일깨워준다. 자본주의가 휩쓸고 있는 오늘날 천문과학과 우주기술은 국방력으로서만 아니라 '돈 되는 분야'로도 각광받고 있다.
마침 오늘부터 5일까지 전세계 천문대에서 100시간 연속으로 별을 관찰하는 '100시간 천문학' 행사가 열린다. 이제 우리도 천문과학과 우주기술에서도 세계와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의 자랑스런 천문학적 전통이 천문과학과 우주기술 연구에 자신감을 불어넣는 정신적 유산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박성래(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과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