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길상] ‘후소샤 효과’ 넘어서기

입력 2009-03-11 18:02


4년 주기로 봄이 되면 우리 민족은 아주 특별한 집단 체험을 한다. 일본과의 역사 전쟁이다. 다음 달에 또 다시 이 역사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2001년에 일본의 우익출판사인 후소샤에서 새로 펴낸 중학교용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한국과 중국 국민, 그리고 일본 내의 양식 있는 지성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했다.

한국과 중국 여론의 질타, 그리고 일본 시민단체의 불채택 운동이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문제의 이 교과서는 0.039%라는 아주 낮은 채택률을 보이고 교육현장에서 외면당했다. 정규 중학교에서는 단 한 군데도 이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교과서를 집필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과 후소샤 출판사는 4년 후를 기약했다.

일본 교과서 전체 살펴야

4년이 지난 2005년 4월 초, 낙산사가 불에 타던 바로 그날, 후소샤의 개정판 역사 교과서는 또 다시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했다. 일본 언론에서는 아주 작은 단신으로 취급했지만 한국의 언론, 시민단체, 정부, 학계는 여러 날 동안 일본 정부의 무성의한 태도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그해 8월말에 발표된 교과서 채택 결과 후소샤 교과서는 4년 전에 비해 10배 정도 증가한 0.4%의 채택률을 기록했다. 몇 곳의 정규 중학교에서도 이 교과서를 채택했다. 후소샤에서 목표로 했던 10%의 채택률에 비해서는 형편없는 결과였지만 10배의 성장은 경계할 만한 숫자였다.

그리고 다시 4년이 지났다. 후소샤는 문부과학성에 개정된 역사교과서의 검정을 신청했고, 그 결과는 한 달 후에 발표된다. 후소샤 교과서의 내용을 둘러싼 한·일간의 결전이 임박해 있다. 지난 8년간의 경험을 통해 후소샤는 일본 역사교과서의 상징이 되었고, 후소샤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과 갈등은 외국 교과서를 보는 우리의 시각에 좋지 않은 영향을 남겼다. '후소샤 효과'라고 부를 만하다.

먼저 후소샤 이외의 일본 교과서에는 무관심하게 됐다. 일본에는 수십 종의 역사 교과서가 있다. 후소샤 교과서보다 우리 역사를 더 왜곡하는 것도 있다. 동북공정을 반영해 '고구려나 발해를 어느 나라 역사로 보아야 할지는 알기 어렵다'고 서술한 교과서가 대표적이다. 일본 중학생의 0.4%가 읽는 교과서에 매달리기보다 일본 교과서 전체를 보는 시야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다음으로는 후소샤 교과서로 인해 우리는 외국 교과서는 모두 왜곡됐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외국의 많은 나라 교과서에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경제발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런 서술이 확대되고 있다. 우리 역사를 뒤틀어 보는 것은 일부 국가에 불과하다. 오류 시정만큼 중요한 것이 좋은 외국 교과서에 대한 지지와 격려다.

이에 덧붙여 역사 왜곡을 남의 탓으로 돌리려 한다. 우리 역사를 외국 교과서에서 잘못 소개하거나 축소 서술하는 것은 결코 그들만의 탓이 아니다.

우리 역사 바르게 알리자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다양한 외국어로 된 자료의 개발, 우리 역사에 대한 국제협력연구, 그리고 해외 한국학에 대한 과감한 투자 없이 외국 교과서에 의한 한국 이미지 왜곡은 해소되기 어렵다. 한국을 바로 알리는 것이 왜곡이나 오류 시정보다 중요하고 시급하다.

4월 초에 재연될 한·일간의 역사교과서 갈등에서 더 이상 후소샤 효과가 나타나지 않기를 기대한다. '세계의 중심에 일본을 위치 지우는 역사서술'을 하겠다고 외치는 저급한 교과서에 국력을 모아 대응하는 모습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세계의 다양한 교과서가 한국을 보는 방식과 일본이 한국을 보는 방식을 비교하고, 차분하게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방식 찾기에 지혜를 모으는 생산적인 봄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길상(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